남아메리카의 역사

버지니아는 노예주였나, 자유주였나? — 역사적 사실 정리

버지니아는 명백히 노예주(slave state)였습니다. 버지니아에서 노예제는 초기 식민지 시대부터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까지 경제와 사회 전반에 깊숙이 뿌리내린 제도였습니다.

노예제의 시작과 확립

1619년 최초의 아프리카인들이 제임스타운에 도착하면서 버지니아에 노예제의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이후 담배 농장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값싼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커졌고, 아프리카인 노예 노동은 버지니아 경제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705년에는 노예의 법적 지위를 규정한 법령이 시행되면서 노예제가 제도적으로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미국 최대의 노예 보유 주

19세기 초 버지니아는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은 노예 인구를 보유한 주였으며, 남부와 서부로 노예를 판매하는 '내국 노예 무역'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 등 여러 건국의 아버지들이 버지니아 출신이었지만, 그들 상당수 역시 노예 소유자였다는 점은 미국 건국 이념과 현실 사이의 모순을 잘 보여줍니다.

남북전쟁과 노예제의 종언

1861년 버지니아는 연방 탈퇴에 동참하여 남부연합(Confederacy)에 가담했고, 주도 리치몬드는 남부연합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결국 1865년 남북전쟁이 종결되고 미국 수정헌법 제13조가 비준되면서 노예제는 전국적으로 폐지되었고, 버지니아의 오랜 노예제 역사도 막을 내렸습니다.

요컨대 버지니아는 자유주(free state)가 아니라, 미국 노예제 역사의 한복판에 있었던 대표적인 노예주였던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