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2004년 로스토크에서 총격으로 숨진 메흐메트 투르구트…NSU 신나치 테러가 남긴 상처

2004년 2월 25일, 독일 로스토크(Rostock)에서 메흐메트 투르구트(Mehmet Turgut)가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습니다(자료 사진). 당시 25세였던 그는 터키 출신으로 함부르크에 거주하던 인물로, 이날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 로스토크를 찾은 참이었습니다.

재의 수요일 아침, 토이텐빙켈에서 벌어진 처형

투르구트는 로스토크 토이텐빙켈(Toitenwinkel) 지역의 케밥 가판대를 열었습니다. 재의 수요일 아침, 그는 스스로 가판대 잠금장치를 해제했고, 오전 10시 직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오늘날까지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2013년 법정에서 경찰 관계자는 목과 머리에 가해진 "거의 빗나갈 뻔한" 총격, 즉 전형적인 처형 방식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메흐메트 투르구트의 나이는 고작 25세였습니다.

수년간 발각되지 않은 채 자행된 신나치주의자들의 살인

법정에서는 가해자 우베 문들로스(Uwe Mundlos), 우베 뵌하르트(Uwe Böhnhardt), 베아테 츠셰페(Beate Zschäpe)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세 사람은 극우 테러 조직 '국가사회주의 지하조직(NSU)'을 결성했으며, 총 10건의 살인, 폭탄 테러 등 각종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유일한 생존 멤버인 츠셰페에 대한 재판은 지난해 3월부터 뮌헨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보스포루스' 특별수사본부와 도네르 케밥 살인 의혹

당시 로스토크를 방문 중이던 투르구트가 표적이 되었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됩니다. 재판에서 한 증인은 "그들은 단지 죽이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유족이 법정 공동 원고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 대가는 큽니다. 츠셰페가 끔찍한 범행에 대한 세부 묘사까지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고통은 투르구트 유족들이 겪어온 고통의 마지막 장에 불과합니다. 경찰이 NSU와의 연관성을 인식한 것은 2011년에야 이루어졌습니다. 그 전까지 '보스포루스(Soko Bosporus)' 특별수사본부는 수년간 터키 출신 가해자를 찾는 데 매달렸고, 피해자 역시 같은 환경에서 살해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메흐메트인가, 아니면 그의 형제 유누스인가?

살인에 사용된 무기가 마침내 실마리를 제공하며 사건들을 연결시켰습니다. 체스카(Ceska) 83 권총은 다른 4건의 살인에도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뮌헨·뉘른베르크·로스토크 검찰은 비로소 수사를 통합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디테일 중에는 당혹스러운 부분도 있습니다. 당국은 2011년까지 피해자를 유누스 투르구트(Yunus Turgut)로 잘못 추정했습니다. 메흐메트의 형제 유누스는 독일에 반복적으로 망명을 신청했으나 번번이 성공하지 못했고, 형제는 이름을 서로 바꿔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슈피겔 온라인'에 따르면 기소장에 기재된 피해자의 이름은 여전히 유누스로 남아 있습니다.

베아테 츠셰페에 대한 판결은 약 2년 후에 선고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법적 절차는 일단락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투르구트 가족과 지인들의 고통은 여전히 계속됩니다.

살인 사건 10주기를 맞아 로스토크-디어코프(Rostock-Dierkow)의 범행 현장에는 서로 마주 보는 두 개의 콘크리트 벤치로 이루어진 추모비가 공개되었습니다. 안내문에 따르면 이곳은 "조용한 대화"를 나누며 피해자를 기리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