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고르레벤에 핵폐기물이 온 날: 1984년 첫 운송, 독일 원자력 분쟁의 시작점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실은 트럭 행렬, 철로에 몸을 묶은 시위대,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핵폐기물 처분장 후보지 논쟁까지—니더작센주의 작은 마을 고르레벤(Gorleben)은 수십 년간 독일 원자력 논쟁의 상징이 되어 왔습니다. 1984년 10월 8일, 이 마을에 처음으로 핵폐기물이 도착했습니다.

1984년 10월 8일, 첫 번째 핵폐기물 운송

1984년 10월 8일 오전 8시 42분, 로우로더(low loader) 4대가 슈타데(Stade) 원자력발전소를 떠났습니다. 200리터 드럼통 210개에 담긴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실은 이 차량들은 아직 비어 있던 니더작센주 고르레벤 임시저장시설로 향했습니다.

반원자력 진영은 이번 운송 소식을 너무 늦게 접했습니다. 운동가들은 전화망을 통해 지지자들에게 알리며 신속히 움직였지만, 휴대전화나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운송 차량은 예상과 달리 벤트란트(Wendland)를 관통하는 L216 연방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울첸(Uelzen) 방면으로 우회해 남쪽에서 고르레벤에 접근했습니다.

대규모 경찰·연방국경수비대 병력 동원

운송 차량을 보호하기 위해 대규모 경찰 병력과 연방국경수비대(BGS)가 동원되었습니다. 경찰 헬리콥터가 상공에서 상황을 살피고, 경찰관 약 2,000명이 탑승한 50여 대의 경찰 차량이 도로를 경비했습니다. 괴델리츠(Gedelitz)와 고르레벤 사이 구간에서는 경비 요원들이 길가에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NATO 철조망을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반핵 시위대는 저녁 무렵에야 간신히 운송 행렬을 일시적으로 막을 수 있었지만, 그때는 이미 임시저장시설까지 불과 수백 미터를 남겨둔 상태였습니다. 예상과 달리 고르레벤 드럼통 저장소의 첫 보관 작업은 순탄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반핵 진영: "고르레벤 저장은 불법"

1984년 봄 첫 운송 계획이 알려지자 반핵 활동가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들은 특히 고르레벤으로 이어지는 철도 노선을 따라 여러 차례 저항 행동을 벌였습니다. 드럼통 저장소 시운전을 앞두고는 법적 공방도 이어졌습니다. 시위대는 뤼네부르크(Lüneburg) 행정법원에 폐기물 반입에 대한 임시금지신청을 제출했고, 뤼호프다넨베르크(Lüchow-Dannenberg) 지역 주민들을 대변하는 변호사 라이너 게울렌(Rainer Geulen)은 임시저장시설 운영자가 운송과 함께 조성한 '기정사실화'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두 번째 운송, 더 많은 장애물

10월 8일 저녁, 다음 날 슈타데에서 고르레벤으로 또 한 번의 운송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월요일에 허를 찔린 반핵 진영은 이미 화요일 밤부터 주차된 차량, 통나무, 불태운 짚단 등으로 수많은 도로 봉쇄물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1984년 10월 9일 오전 9시 45분, 컨테이너 10개에 드rum통 296개를 나눠 싣고 굴절식 트럭이 슈타데를 출발했습니다. 이날에는 경찰 밴 약 40대가 운송을 호위했고, 전날보다 훨씬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호송대는 저녁 무렵 임시저장시설에 도착했습니다. 운송이 이처럼 서두른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슈타데 원자력발전소에 TÜV 검사가 예정되어 있어, 그곳의 저장시설을 1984년 10월 중순까지 비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트란스누클레어 스캔들: 허위 신고된 드럼통

그러나 드럼통들이 임시저장시설에 머문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습니다. 1980년대 말, 하나우(Hanau)에 본사를 둔 트란스누클레어(Transnuklear)가 벨기에 몰(Mol) 핵연구시설에서 반입한 핵폐기물 드rum통을 실제보다 적게 신고해 유통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즉, 신고된 것보다 더 많은 방사성 폐기물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른바 '경핵 스캔들'로 불린 이 사건의 드rum통 약 300개도 고르레벤에 보관됐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다른 드rum통들 역시 가스 발생으로 인한 부식 손상과 부풀어 오른 흔적이 다수 확인됐고, 상당수 드rum통의 출처와 내용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누락되어 있었습니다. 1990년대에는 1,296개의 드rum통이 저장소에서 옮겨져 다른 곳에서 정비·보관되었으며, 벨기에에서 반입된 32개를 포함한 일부만 다시 고르레벤으로 돌아왔습니다.

처분장 수색과 '고르레벤 문제'

첫 핵폐기물 운송이 있은 지 나흘 뒤인 1984년 10월 12일, 뤼네부르크 행정법원은 고르레벤 방사성 물질 반입에 대한 임시금지신청을 기각했습니다. 하지만 임시저장시설을 둘러싼 갈등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특히 1995년부터 시작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운송 열차 '카스토르(CASTOR)' 반대 시위에서 갈등이 크게 표출되었고, 반핵 시위대와 경찰 간 대규모 충돌이 여러 차례 빚어졌습니다.

수십 년간 고르레벤에 집중해 온 당국은 2013년부터 전국 단위로 적합한 핵폐기물 처분장 후보지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어떤 시추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보호벽은 해체되고 파일럿 컨디셔닝 플랜트 건설은 중단되었습니다. 많은 정치인들은 고르레벤 부지가 정치적으로 '소진'되었거나 부적합하다고 판단합니다. 그럼에도 고르레벤이 완전히 처분장 후보에서 배제된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광산을 메우지 말고 개방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전국 단위 처분장 수색이 '백지 상태'에서 시작한다고 발표했던 만큼, 반대 측이 비판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