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칸 전쟁의 승리, 그리고 에게해의 패권
발칸 전쟁이 승리로 끝난 뒤, 그리스 해군은 에게해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터키는 패배를 좌시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당시 브라질이 발주하여 영국에서 건조 중이던 강력한 전함을 터키가 인수하기로 합의하면서, 동지중해의 해양 세력 균형은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의 대응, 독일로 향하다
이러한 사태에 대비해 그리스 해군 역시 그에 걸맞은 전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그리스는 독일 함부르크의 불칸(Vulcan) 조선소에 신형 전함 건조를 발주하기로 결정합니다. 다만 그리스 정부는 아직 어떤 함선을 원하는지 확정하지 못한 상태였고, 첫 번째 설계 요구사항이 제시된 것은 1912년 7월이 되어서였습니다.
연안방어함에서 정규 전함으로
초기 그리스의 요구사항은 소형 연안방어전함이었습니다. 길이 139.6m, 배수량 13,500톤 규모로, 356mm(14인치) 주포 6문, 152mm(6인치) 포 8문, 76mm 포 8문, 37mm 대공포 4문과 어뢰발사관 4기를 갖추고 최대 속력 21노트를 내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 측은 설계 요구사항을 다시 변경했고, 마침내 '살라미스(Salamis)'라는 이름이 붙을 이 배는 길이 173.3m, 배수량 19,500톤에 달하는 본격적이고 강력한 정규 전함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살라미스'의 무장과 성능
살라미스의 주 무장은 4개의 연장 포탑에 배치된 356mm 중포 8문이었으며, 상부 구조물을 따라 늘어선 152mm 포 12문이 부포 역할을 맡았습니다. 여기에 75mm 속사포 12문과 500mm 어뢰발사관 5기가 추가되었습니다.
추진 기관은 AEG제 증기 터빈으로, 총 40,000마력을 발생시켜 최대 속력 23노트를 낼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터키 전함의 포탄을 견디는 장갑
장갑 또한 강력하게 계획되었습니다. 터키의 신형 전함이 장비하게 될 305mm(12인치) 함포의 직격탄을 견딜 수 있도록, 현측 장갑벨트와 포탑·포좌, 그리고 탄약고에는 최대 250mm 두께의 장갑이 적용될 예정이었습니다.
세계대전이 가져온 좌절
살라미스는 1915년 3월 인도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사정은 완전히 어긋나 버립니다. 영국이 독일에 대한 해상 봉쇄를 감행하면서, 이 배의 주포로 쓰일 미국제 함포를 인도받는 것이 불가능해졌고, 결국 1914년 12월 31일 건조 작업은 중단되었습니다.
독일 측은 미완성인 선체라도 인수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리스 정부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결국 고철로, 그리고 남겨진 대금
이 문제는 1932년에야 매듭지어졌습니다. 그리스는 결국 배를 단 한 번도 인도받지 못한 채, 함선 구입 총액의 약 37%에 해당하는 48만 파운드를 독일 조선소에 지급해야 했습니다. 미완성으로 방치되었던 살라미스는 브레멘으로 옮겨져 고물상에 판매되었고, 에게해의 패권을 노렸던 이 거함은 한 번의 출항도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