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튀링겐의 랑엔잘자(Langensalza)에는 19세기 '값비싼 전투'를 기념하는 기수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기념비가 가리키는 역사의 현장이야말로 하노버 왕국의 운명을 결정짓던 순간입니다.
오늘날 니더작센의 역사는 통치 가문인 구엘프(Welf) 가문, 그리고 영국 왕실과의 특별한 연결고리와 밀접하게 얽혀 있습니다. 북부 독일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때때로 동프리슬란트에서 괴팅겐 일대까지 뻗쳤습니다. 유럽의 질서를 다시 그린 1814~15년 빈 회의에서 이 지역은 영국 국왕 조지 4세의 통치를 받는 왕국으로 승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합의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866년, 랑엔잘자 인근 전장에서 하노버 왕국은 무참히 무너지고 맙니다.
1866년, 하노버를 덮친 위기
1866년 여름, 독일의 패권을 두고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오스트리아가 속하지 않은 독일 관세 동맹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키운 군사 강국 프로이센은 독일 주도권을 장악할 절호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하노버 왕국을 포함한 13개 국가는 오스트리아 편에 섰고, 대부분 북독일 국가인 18개 동맹국은 프로이센과 함께했습니다.
6월 중순, 프로이센군이 함부르크와 민덴 방면에서 하노버를 향해 진격하자 하노버군은 남쪽으로 후퇴해 동맹군과 합류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6월 27일, 튀링겐의 랑엔잘자에서 프로이센군과 격돌합니다. 이 전투에서 하노버군은 처음에는 승기를 잡았지만, 부족한 장비와 끊긴 보급 속에서 현대화된 프로이센군의 군사적 우위에 계속 밀리며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말았습니다.
항복, 그리고 지도에서 지워진 왕국
1866년 6월 29일, 하노버군은 조지 5세 국왕의 승인 아래 항복했습니다. 하노버 왕국은 프로이센의 한 주(州)로 편입되었고, 독립국으로서 독일 지도에서 사라졌습니다. 국왕 게오르크는 먼저 빈으로, 이후에는 파리로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같은 해 7월 3일, 프로이센군은 보헤미아의 쾨니히그레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며 전쟁의 승패를 확정지었습니다. 이 흐름 속에서 1871년 프로이센 주도로 독일 제국이 건국되었고, 오스트리아는 더 이상 제국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옛 구엘프 가문의 영토는 현재 하노버 지방에 속하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니더작센 연방주에 통합되었습니다.
구엘프 재산 압수 분쟁: 수십 년에 걸친 항쟁
왕국이 사라진 뒤에도 하노버의 조지 5세와 그의 상속인들은 압수된 구엘프 가문의 소유권을 놓고 프로이센에 맞섰습니다. 조지 5세는 1878년 6월 12일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자신의 땅을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그의 후손들 역시 프로이센 국가에 대한 권리 주장을 이어갔습니다.
길고 복잡한 과정 끝에 1933년에야 제국의회는 하노버 남쪽 마리엔부르크 성에 자리한 구엘프 가문의 거처와 칼렌베르크 사유지와 관련해, 하노버 왕가에 약 천만 라이히스마르크의 보상금을 지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