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스코페 전투: '불가리아 학살자' 바실리우스 2세, 불가리아군을 분쇄하다

스코페 전투:  불가리아 학살자  바실리우스 2세, 불가리아군을 분쇄하다

차르 사무일과 제1차 불가리아 제국

그리스의 알렉산더처럼 오늘날 스코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영웅으로 둔갑한 불가리아의 통치자 사무일(사무엘)은, 비잔티움과의 전쟁에서 연이은 승리로 군대를 이끌며 997년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을 세우고 차르로 즉위했습니다.

비잔티움 황제 바실리우스 2세는 찬탈자들과의 내분, 그리고 아랍 세력과의 전쟁에 시달리느라 초기에는 불가리아의 위협에 대응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이 황제는 기회만 보이면 즉시 반격에 나설 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비딘 함락과 남진 작전

1000년, 바실리우스는 사무일에 대한 첫 번째 성공적인 원정을 단행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정세 변화로 잠시 발이 묶였고, 1003년에야 서마케도니아의 사무일을 직접 타격한다는 목표로 불가리아 원정을 재개했습니다. 바실리우스는 먼저 군대를 북쪽으로 진군시켜 다뉴브 강변의 도시 비디니오(오늘날 비딘)를 노렸습니다. 견고하게 요새화된 이 도시는 8개월간 버텼지만 끝내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이에 맞서 사무일은 주의를 돌리기 위해 동트라키아의 아드리아노플을 공격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바실리우스는 계획대로 비딘을 손에 넣은 뒤 모라바 강을 따라 남하하며 불가리아의 요새와 성채를 하나씩 체계적으로 파괴해 나갔습니다. 마침내 비잔티움군은 스코페 인근까지 진격했습니다.

악소스 강변의 대치

연패를 거듭한 사무일에게 자신의 국가 행정 중심지인 이 도시의 함락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군대를 소집해 비잔티움군과의 결전을 준비했습니다.
불가리아군은 악소스 강(현 바르다르 강)을 따라 이동하여 도시에서 멀지 않은 남안에 진영을 폈습니다. 그러나 불가리아인들은 강한 물살이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 믿고 제대로 된 경계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실리우스는 결코 방심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황제는 경기병대에 지역을 샅샅이 정찰하게 해 지형과 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확보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복귀한 정찰대장은 불가리아군이 부근에서 심각한 경계 없이 야영 중이라고 보고했고, 나아가 급류를 이루는 악소스 강이라도 군대가 건널 수 있는 얕은 여울이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결정적인 기습

즉시 군대를 소집한 위대한 황제는 불가리아군을 기습하기 위해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졌습니다. 결과는 그가 의도한 대로였습니다. 비잔티움군은 그림자처럼 조용히 건너 무방비한 불가리아군에게 기습을 퍼부어 수천 명을 베어 넘겼습니다.

겁에 질린 사무일은 간신히 따라온 기병들과 함께 도주했고, 불가리아 보병대는 사실상 궤멸당했습니다. 이 대승은 10년 후 클레이디온 전투라는 결정적 국면을 열게 되는 서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