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미국식 역사 수정주의의 한계… 스파르타와 테르모필레 전투를 왜곡하다

미국식 역사 수정주의의 한계… 스파르타와 테르모필레 전투를 왜곡하다

최근 미국의 한 잡지는 마이크 콜(Myke Cole)이라는 작가가 집필한 '스파르타 숭배, 하나의 정신적 암세포'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콜은 고대 스파르타에 호감이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개인적 반감과 역사적 진실의 완전한 왜곡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

터무니없는 주장의 시작

그는 스파르타에 관한 이야기들이 '허풍떨기 신화'이자 나치즘이 밟고 올라선 '정신적 암세포'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고대 스파르타를 '백인 우월주의'와 같은 현대의 극단적 이념과 억지로 연결 짓는다.

"패배했으니 강자가 아니다"라는 황당한 논리

또한 그는 스파르타가 전투에서 패배한 적이 있기 때문에 '엘리트 전사'라는 역사적 평가가 틀렸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기가 막힌 논리다. 로마인들도 패배했고, 아시리아인도, 나폴레옹도 패배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역사적으로 형편없는 전사였다는 말인가? 역사상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군대가 어디 있는가? 이것이 과연 진지한 논거로 인정될 만한 것인가?

그는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별다른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고도 주장한다. 이는 사실이지만, 그 원인은 해상권을 장악한 아테네에 있다. 아테네인들은 야전에서 스파르타군과 정면으로 맞설 엄두를 내지 못했고, 맞섰을 때는 매번 철저히 격파당했다. 스파르타군이 매년 아티카를 침공하는 동안에도 아테네인들은 오직 성벽 안에 웅크려 숨어 있을 뿐이었다.

테르모필레를 '3일의 지연'으로 치부하는 오만함

더욱 심각한 것은 콜이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그리스, 특히 스파르타의 영광을 전혀 읽어내지 못하고, 이를 단지 크세르크세스 대군을 3일간 늦춘 사건으로만 취급한다는 점이다. 설령 헤로도토스가 기록한 페르시아군의 규모가 과장되었다고 치더라도, 페르시아군이 10만 명이었든, 5만 명이었든, 아니면 겨우 1만 명이었든 간에 죽음만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1,000명의 그리스인(스파르타 전사 300명, 테스피아이 병사 700명)이 끝까지 남아 싸우기를 택한 결단이 대체 어떻게 위대하지 않다는 말인가?

맥주와 햄버거를 즐기며 살아가는 이 미국 작가에게 대체 '영웅주의'란 무엇인가? 수천 년의 세월 동안 후대에 귀감이 된 이 1,000명의 그리스인이 남긴 본보기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인가? 플라타이아 전투 당시 그리스 연합군은 레오니다스와 그의 병사들의 이름을 승리의 구호로 삼았다.

'인종차별'이라는 억지 프레임

게다가 콜은 스파르타에 대한 지나친 적개심을 드러내며, 나아가 테르모필레 전투가 강렬한 '인종차별적·반(反)이민 정서'를 풍긴다고까지 쓴다. 페르시아인이 이민자였단 말인가? 그들은 침략자였다. 누구도 그들을 초대한 적이 없으며,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조국을 짓밟은 침략자들을 훌륭하게 몰아냈다.

나치즘과의 억지 결부는 더욱 가관이다

이보다 더 잘못된 것은 고대 스파르타를 나치즘과 연결하려는 이 미국 작가의 시도다. 히틀러가 스파르타나 테베 같은 고대 도시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는 그 자신의 왜곡된 관점, 부족한 역사 지식, 그리고 어리석음의 산물일 뿐이다. 히틀러 같은 후진적인 인종주의자가 스파르타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았다고 해서, 그것이 고대 도시 스파르타의 책임일 리 없다.

올바른 역사 인식의 핵심은 인물과 사건, 상황을 그 당시의 역사적 맥락과 당대의 통용 기준 속에서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시대를 뛰어넘는 역사적 비약은 역사학이 아닌 낭설일 뿐이다. 레오니다스의 '몰론 라베(Molon Labe, 원한다면 와서 빼앗아 가라)'에도 나치즘의 흔적은 조금도 없다. 그리스인들은 길어진 역사 속에서 다양한 표현으로 이와 같은 구호를 수천 번 되새겨 왔다. 이는 콜 씨의 국가처럼 겨우 300년 남짓한 짧은 전통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