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0년, 작은 나라 네덜란드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세계 최대 규모의 전쟁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더 큰 문제는 군사적으로 충분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네덜란드는 제1차 세계대전에 휘말리지 않았고, 이러한 경험은 지도부에게 안일한 안보의식을 심어주었다. 다가올 전쟁에서도 그 운명을 피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네덜란드 육군은 규모가 매우 작았으며, 1922년부터 만 18세 남성의 복무 기간은 고작 165일에 불과했다.
늦게나마 이루어진 재무장
국제 정세가 위태로워지면서 1938년 4월부터 복무 기간은 11개월로 연장되었지만, 어쩌면 이미 늦은 조치였다. 육군은 참모본부와 11개의 병과·군단을 두고 있었다. 보병은 48개 보병연대, 24개 예비 보병대대, 21개 예비 국경 보병중대, 2개 자전거연대, 22개 기관총중대로 구성되었다. 기병은 5개 승마연대와 2개 오토바이연대, 그리고 2개 장갑차중대를 운용했으며, 포병은 22개 연대, 1개 차량화연대, 2개 대공연대와 해안포 부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네덜란드 육군의 편제
네덜란드 육군의 핵심 전력은 총 4개 야전군단이었다. 각 군단은 2개 보병사단을 기반으로 했으며, 여기에 임시로 편성된 '필(Peel)' 사단(같은 이름의 강에서 따온 명칭), 경기동사단, 그리고 독일군의 공격 당시 아직 완편되지 못한 3개 보병여단이 추가되었다. 이와 함께 국경 방면을 담당하는 부대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최후의 방어선인 '네덜란드 요새' 사령부도 존재했다.
사단과 연대의 내부 구조
각 사단은 3개 보병연대와 포병연대, 공병 및 근무 부대로 구성되었다. 하나의 연대는 3개 보병대대, 박격포중대, 대전차중대, 그리고 57mm 경곡사포 포대를 두었다. 각 대대는 3개 소총중대와 1개 기관총중대로 편성되었다. 소총중대의 정원은 184명이었으며, 중대는 3~4개 소대로 나뉘고 각 소대는 다시 3~4개 전투조로 구성되었다.
현역 연대인 제1~24연대의 정원은 2,691명이었고, 예비 성격의 제25~48연대는 2,200명을 확보하고 있었다. 자전거연대 역시 각각 3개 대대를 두었으며, 각 대대는 165명 규모의 소총중대 3개와 기관총중대, 대전차중대, 박격포소대로 이루어졌다.
병사들의 무기와 장비
네덜란드 병사들을 상징하는 것은 특유의 M1927 강철 헬멧이었다. 자전거부대는 6.5mm 만리허 M1895 카빈총으로 무장했고, 일반 보병들은 같은 계열의 소총을 사용했다. 각 사단에는 97발 탄창을 사용하는 6.5mm 루이스 M20 기관총 216정과 6.5mm 슈바르츠로제 M08/15 기관총 108정이 배치되었다. 여기에 81mm 스토크스-브랑 박격포 18문과 47mm 뵐러 대전차포 12문이 더해졌다.
박격포중대는 3개 소대로 구성되어 소대마다 박격포 2문씩을 운용했으며, 대전차중대 역시 화포 6문을 보유했다. 서류상으로는 나름의 체계를 갖추고 있었지만, 현대식 전차와 항공 전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였기에 독일군의 기계화 전술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40년 5월 10일, 침공의 시작
네덜란드는 1940년 5월 10일 이른 새벽 독일군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 네덜란드군 앞에 선 적은 독일 제6군과 제18군이라는 압도적인 병력이었다. 독일의 공격이 개시되자 프랑스 제7군이 네덜란드를 지원하기 위해 북진했지만, 전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북부 전선에서는 독일군의 공격이 네덜란드군에 의해 효과적으로 저지되었고, 그들의 저항은 항복할 때까지 결코 꺾이지 않았다. 중부 전선에서는 네덜란드 제2군단과 제4군단이 '그레베(Grebbe)' 방어선에서 끝까지 격렬히 저항하다 5월 14일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마스트리히트 함락과 로테르담의 비극
남부에서는 제3군단이 가능한 한 오래 버텼지만, 마스트리히트에서 패배하여 후퇴를 강요당했다. 동시에 독일 공수부대가 네덜란드군 후방 곳곳에 투하되어 혼란을 가중시켰다. 네덜란드 경기동사단이 반격에 나섰지만, 루프트바페(독일 공군)의 강력한 지원을 받은 독일군에 의해 격퇴되고 말았다.
사방에서 협공당한 네덜란드는 마침내 로테르담에 대한 무차별 폭격 이후 항복을 선택했다. 도심이 잿더미로 변한 이 폭격은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남겼다. 짧은 전쟁에서 네덜란드군은 10,800명의 손실을 입었고, 독일군 역시 9,300명의 사상자를 감수해야 했다. 네덜란드 육군은 1940년 7월 15일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