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1941년 4월, 최후의 승리 — 카치미트로스 장군과 '임시 배속'된 피레우스 제34연대

1941년 4월, 최후의 승리 — 카치미트로스 장군과  임시 배속 된 피레우스 제34연대

1941년 4월 20일, 독일군은 클리디와 클레수라 전투에서 연달아 승리를 거두며 이미 라리사에 도달해 있었다. 같은 시각 그리스군은 북에피루스에서 철수하는 와중에 상당 부분 스스로 와해된 상태였다.

와해의 충격, 그리고 카치미트로스 장군

부대 해산의 충격은 대부분의 그리스 사단을 덮쳤고, 그 첫번째는 크레타 출신 제5보병사단이었다. 이 혼란은 점차 다른 부대로 번져 나갔다. 전쟁 초기 가장 위험했던 나날 동안 단독으로 이탈리아군을 막아낸 영웅적인 제8사단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노련한 지휘관 하랄람보스 카치미트로스 중장마저 해산 사례와 규율 문제에 시달려야 했다.

제8사단은 1941년 1월부터 3월까지 가장 참혹한 시련을 겪었다. 북극에 가까운 혹한 속에서 이탈리아군의 포화에 시달리며 저주받은 쿠르벨레시 고원을 지켜야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사단은 끝까지 버텨냈다. 그러나 자신들이 패배시켰던 적, 즉 이탈리아군을 상대로 후퇴한다는 사실은 병사들의 사기를 크게 흔들었다. 그래도 상황은 다른 부대들처럼 통제권을 벗어나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부활절, 카카비아 방어선

제8사단은 4일간의 행군 끝에 4월 20일, 바로 부활절 날 카카비아에 도착해 방어 태세를 갖췄다. 이때 사단 지휘 아래에는 '임시 배속' 형태로 피레우스의 명문 부대인 제34보병연대가 배속되어 있었다. 제34연대의 한 개 대대는 제8정찰대대 기병들과 함께 그라프시 일대의 카카비아 방어진지 경비 임무를 맡았다.

오전 8시, 제3대대/제34연대 대대장 얀눌리스 소령이 카치미트로스에게 긴급 보고를 올렸다. 진지 전방에 이탈리아군이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보병과 자전거 부대, 그리고 무엇보다 전차가 등장한 것이다. 이탈리아 보병 대대 하나가 그리스 진지로 전진했고, 한 개 중대는 사격 가능 거리 안으로 들어와 발포를 시작했다.

이윽고 또 다른 이탈리아 대대와 포병 중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카치미트로스는 얀눌리스에게 전초 진지를 정리하고 카카비아 주 저항선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했고, 명령은 곧 실행되었다. 그러나 같은 시각 이탈리아군과 독일군의 항공기가 하늘을 채우며 저항할 상대도 없이 그리스 부대들을 집중 공격했다. 제3대대/제34연대가 특히 큰 시련을 겪었는데, 전사 11명과 부상 32명이라는 피해를 입었다.

'그리스군은 아직 패하지 않았다'

잠시 후 이탈리아군이 접근해 포병과 박격포로 그리스 진지를 두드리기 시작했고, 이어 보병이 돌격해 나섰다. 그러나 그들은 뜻밖의 충격에 직면한다. 그리스군은 아직 패배하지 않았던 것이다. 적어도 카치미트로스 휘하의 병사들은 그러했다.

그리스 포병이 먼저 포문을 열어 공격해 오는 이탈리아군의 전진 속도를 늦췄다. 이탈리아군은 자국 포병과 항공력의 지원을 등에 업고 공격을 이어갔다. 하지만 제3대대/제34연대의 방어선 장벽 앞에 다다른 순간, 그들은 막대한 손실을 내며 저지당하고 말았다.

364 고지를 지킨 종일의 전투

이탈리아군은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의 공격 목표는 제3대대/제34연대가 방어 중이던 카카비아의 364 고지였다. 공격은 어둠이 내릴 때까지 종일 계속되었지만, 이탈리아군은 끝내 고지에 발판조차 세우지 못했다.

제8사단과 '임시 배속'된 제3대대/제34연대는 끝까지 싸워냈다. 다음 날인 4월 21일, 휴전 협정이 조인되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그들의 최후의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