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7월 23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사라예보 사건 이후 세르비아에 역사상 가장 엄격한 외교 문서 중 하나로 평가되는 최후통첩(ultimatum)을 보냈습니다. 이 통첩에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최후통첩의 6가지 핵심 조건
1. 반오스트리아 선전 공개 규탄
세르비아는 세르비아 내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된 반(反)오스트리아 선전 활동을 공식적으로 규탄하고 부인해야 했습니다.
2. 반오스트리아 언론과 시위 금지
반오스트리아 성향의 출판물과 공개 시위·집회를 즉각적으로 억제해야 했습니다.
3. 관련 인사들의 직무 배제
반오스트리아 선전에 연루된 군인 및 행정 공무원들을 군대와 행정 기관에서 모두 제거해야 했습니다.
4. 오스트리아 관계자의 수사 참여 허용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암살 사건에 대한 수사에 오스트리아 측 관료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이는 세르비아의 주권을 침해하는 조항으로, 가장 큰 논란이 되었습니다.
5. 조치 이행 결과 보고
위 조건들의 이행 상황을 오스트리아 정부에 즉시 보고해야 했습니다.
6. 48시간 내 회신
세르비아는 이 통첩에 대해 단 48시간 이내에 답변을 보내야 했습니다.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세르비아가 이 조건들을 수락하지 않을 경우 군사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명백히 경고했습니다. 사실상 전쟁을 강요하는 통첩이었던 셈입니다.
역사적 의미
세르비아는 대부분의 조건을 수락했지만, 국내법 위반 및 주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일부 조항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이를 충분한 응답으로 간주하지 않았고, 결국 7월 28일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 최후통첩은 한 번의 암살 사건이 어떻게 유럽 전체를 전쟁으로 몰아넣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계기로 기록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