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요아킴 폰 리벤트로프는 정말 오타와에서 샴페인을 팔며 하키를 쳤던 나치 관료였을까?

요아킴 폰 리벤트로프(Joachim von Ribbentrop, 1893~1946)가 나치 독일의 외무장관을 지낸 인물이라는 점은 확실합니다. 다만 질문 속 이야기는 서로 다른 시절이 뒤섞여 있어, 사실과 왜곡이 반반 섞여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캐나다에 산 것은 사실, 하지만 소년 시절의 일

리벤트로프는 1910년경, 열일곱 살 무렵에 캐나다로 건너갔습니다. 몬트리올과 오타와 일대에서 은행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으며, 얼음 위에서 아이스하키를 즐겼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당시 함께했던 사람들은 그가 하키 선수들과 어울려 경기를 했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이전의 일로, 나치 정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그는 곧바로 독일로 돌아가 군에 입대했습니다.

샴페인 장사는 캐나다가 아니라 독일에서

샴페인 판매와 관련된 이야기는 별개의 시기에 해당합니다. 리벤트로프는 1920년 스파클링 와인 명문 헨켈(Henkell) 가문의 딸 안나 엘리자베트 헨켈과 결혼하면서 사업 기반을 얻었고, 이후 베를린 지사를 운영하며 프랑스산 샴페인과 독일산 스파클링 와인을 판매했습니다. 상류층과 어울리며 사교계에서 활동한 것도 바로 이 무렵입니다.

즉 '오타와에서 샴페인을 팔았다'는 묘사는 캐나다 체류 시절과 독일의 샴페인 사업 시절을 하나로 합쳐 놓은 것입니다.

히틀러 정권의 핵심 인물이 된 것은 한참 뒤

그는 1932년에야 나치당에 입당했으며, 초기부터 히틀러의 최측근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1935년 영국-독일 해군 협정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1936년 주영(駐英) 대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이듬해인 1938년 2월에는 외무장관으로 부임해 1945년까지 재임했으며, 1939년에는 소련과의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에 서명하는 등 독일 외교의 최전선에 섰습니다.

전후 그는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전쟁범죄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1946년 처형되었습니다.

정리

요약하면, 리벤트로프가 젊은 시절 캐나다에서 생활하며 하키를 쳤다는 것, 샴페인 장수였다는 것은 각각 근거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오타와에서 샴페인을 팔며 상류층과 어울린 나치 고위 관료'라는 그림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으며, 그가 히틀러 정부의 핵심 인물로 부상한 것은 1930년대 중반 이후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