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과학을 바꾸어 놓은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인 상대성 이론은 135년 전 독일에서 태어난 한 물리학자를 불멸의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세계 과학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천재가 된 그는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으며, 훗날 학계는 그의 학교 성적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역설은 언제나 그 시대의 천재 곁에 있었습니다. 그의 연구와 질문이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무기 중 하나인 원자폭탄 개발의 기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인슈타인 자신은 결코 그런 목적으로 연구에 일생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시간(그리고 공간)을 넘어 수많은 철학자들을 매료시켰던 진리, 즉 인간의 지식과 창의성이 숭고한 것을 만들어 낼 수도 있지만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해 주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삶과 관련된 핵심 사실들을 정리해 소개합니다.
유대인 헤르만 아인슈타인(Hermann Einstein)과 파울리네 코흐(Pauline Koch)의 아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879년 3월 14일 구 독일 제국 남부의 도시 울름(Ulm)에서 태어났습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이자 과학자가 될 그의 재능은 어린 시절부터 드러났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자연과학과 물리학, 수학에 대한 이해력은 남달리 뛰어났습니다.
10대 시절 아인슈타인과 학교 교사들 사이의 갈등은 드물지 않았습니다. 당시 정부 교육 기관의 거의 군대 같은 규율은 학생들에게 경직된 학습 방식을 강요했고, 이는 인류가 배출한 가장 뛰어난 두뇌 중 하나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었습니다. 불과 15세였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교사의 도움 없이 독학으로 미분과 적분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합니다. 훗날 자신의 이론을 공식화하는 데 결정적인 도구가 된 지식을 스스로 쌓아 갔다는 점에서, 그의 독창성과 특별한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위대한 과학자는 21세에 중부 유럽 최고의 과학 연구 기관인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에서 수학과 물리학 전공으로 졸업했습니다. 오랜 실직 상태 끝에 1902년, 아인슈타인은 친구이자 동문인 마르셀 그로스만(Marcel Grossmann)의 도움으로 스위스 베른에 있는 연방 지적재산권청(특허청) 직책을 얻었습니다. 베른 특허청에서 보낸 7년(1902~1909)은 의심할 여지 없이 이 유명한 물리학자의 인생에서 가장 다작하고 생산적인 시기였습니다.
1905년 그는 브라운 운동에 대한 설명, 광전 효과 연구, 특수 상대성 이론, 질량-에너지 등가 분석 등 여러 논문을 잇달아 발표했습니다. 브라운 운동 연구로 취리히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광전 효과 연구로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베른 대학교와 프라하 대학교에서 이론물리학을 강의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그는 시간을 이미 알려진 세 차원에 더한 '네 번째 차원'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초빙된 그는 앞으로 17년을 살게 될 도시이자, 1920년대 수많은 공격의 표적이 될 특수 상대성 이론을 지켜낼 도시인 베를린으로 이주합니다.
1932년 12월, 아돌프 히틀러가 바이마르 공화국과 독일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기 한 달 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미국으로 피신하여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으며, 프린스턴 고등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y)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남긴 가장 기억에 남는 이론은 단연 특수 상대성 이론(1905)과 일반 상대성 이론(1915)입니다. 전자는 평평한 시공간의 틀 안에서 운동의 물리학을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베른 특허청에서 근무하며 개발한 이 이론은 전자기 상호작용 외에도 물체의 고속 운동을 다루며, 그 결과는 관성 좌표계 연구에 활용되었습니다.
두 번째 이론인 일반 상대성 이론(1915)은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 회의에서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이 이론은 시공간의 기하학이 물질의 영향을 받는다고 전제하며, 여기서 중력장에 대한 상대론적 이론이 탄생합니다. 그 핵심은 부피가 큰 물질(행성 등)이 존재할 때 시공간이 곡률을 나타내고, 그것이 곧 중력장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밝혔다는 데 있습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미국 뉴저지 프린스턴에서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극적인 역설이 이 위대한 과학자의 삶을 장식했습니다. 그의 이론을 바탕으로 최초의 원자폭탄이 개발되었지만, 그것은 과학자 본인이 결코 이루고 싶지 않았던 성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