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키루스 대왕을 물리친 여인, 마사게타이 여왕 토미리스의 전설

역사가 주로 남성 인물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면, 군사 역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전쟁은 거의 전적으로 남성들의 영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사에 대한 기록은 연대기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군대의 선두에 선 여성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유명하면서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 중 하나가 바로 마사게타이의 여왕 토미리스입니다. 그녀는 대왕이라 불린 키루스 2세를 물리치고 살해한 인물입니다.

마사게타이는 고대 중앙아시아의 광활한 초원에 살던 유목민이었습니다. 카스피해 북동쪽과 아랄해 사이에 위치한 이 지역은 오늘날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영토의 일부와 일치합니다. 게타이족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었지만, 언어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그들은 이란계 집단에 속했습니다. 또한 스키타이인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일부 학자들은 부족 연합체로 보기도 합니다.

기원전 6세기 사람들을 다룬 경우가 흔히 그렇듯이, 아홉 권의 역사서를 저술한 헤로도토스가 주요 정보 출처입니다(제1권, CCV~CCXVI). 그는 마사게타이가 앞서 언급한 스키타이인과 마찬가지로 승마 기술에 뛰어났으며, 활과 전투 도끼로 싸웠고, 금과 청동 같은 귀금속을 사용했으며 흉갑에는 철이 없었다고 기록합니다.

키루스 대왕을 물리친 여인, 마사게타이 여왕 토미리스의 전설

그리스 역사가는 일상 생활 풍습도 상세히 검토합니다. 그들은 태양을 숭배하고 말을 종교적 제물로 바쳤으며, 농사를 짓지 않고 가축을 키웠습니다. 발효유를 즐겨 마셨고, 뚜렷한 결혼 제도 없이 여성들이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 문화가 있었지만, 동시에 여성은 왕좌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여성에게 이처럼 높은 지위가 주어진 마사게타이 사회의 특성은 의심할 여지 없이 토미리스 전설의 탄생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 전설은 근동에 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키루스 2세를 물리친 그녀의 승리를 다룹니다. 아케메네스 제국은 알렉산드로스에게 정복당할 때까지 존속했지만, 그 창시자 키루스는 마사게타이의 손에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헤로도토스가 수집한 전설적인 이야기에 따르면, 키루스는 토미리스에게 반해 결혼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한 왕은 정복 원정에 나서 군대를 그녀의 영토로 향하게 했습니다.

페르시아군은 강력하게 진격했고, 여왕의 아들이자 총사령관인 스파르가피세스가 이끄는 부대가 이들을 맞았습니다. 결정적 승부는 아니었지만 전투를 벌여 당분간 침공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칼은 아직 거두어지지 않았는데, 그리스 작가에 따르면 모든 것은 함정 때문이었습니다. 적이 포도주를 마실 줄 모른다는 사실을 안 페르시아인들은 진영과 장비를 버리고 엄청난 양의 술을 남겨둔 것입니다.

그리고 마사게타이 병사들은 승리를 축하하며 술에 취해 문을 열었습니다. 강력한 키루스를 막아낸 것을 축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기습 공격을 감행해 마사게타이군의 3분의 1을 섬멸하고 스파르가피세스를 포함한 많은 포로를 잡았습니다. 아들의 계략이 들통난 데 분노한 토미리스는 적진으로 메시지를 보내 비겁한 속임수를 규탄하며 아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키루스를 피에 목말라 만족을 모르는 자라고 질타했습니다. 역사에 남을 경고의 문구였습니다. "마사게타이의 주군인 태양께 맹세컨니, 당신이 아무리 피에 목말라도 나는 그것으로 당신을 만족시켜 주겠소."

키루스 대왕을 물리친 여인, 마사게타이 여왕 토미리스의 전설

불행하게도 그녀의 아들은 이 재난 앞에 수치심에 사로잡혀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이미 분노에 휩싸인 토미리스는 직접 전사들을 이끌고 페르시아군을 향해 돌격해 그들을 완파했습니다. 공격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처참해서 키루스 본인도 전투 중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의 시신은 참수되어 격분한 여왕 앞에 바쳐졌습니다.

이후 그녀는 인간의 피로 가득 채우라 명령한 가죽 부대에 패자의 머리를 담그며 다음과 같은 기억에 남는 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살아 있는데도 당신은 내 아들을 빼앗아 갔소. 그러나 나는 내 말을 지켜 피로 당신을 만족시켜 주겠소." 이것이 헤로도토스의 기록 방식이며, 스트라본, 폴리아이노스, 카시오도루스, 요르다네스 같은 연대기 작가들도 대왕 키루스가 기원전 559년부터 530년 사이 마사게타이 정복을 시도하다 사망했다고 기록합니다. 반면 크세노폰은 그가 전장이 아닌 침상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그의 최후가 어떠했는지는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소행성의 이름이 된 토미리스는 계속해서 대중문화를 풍요롭게 하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 민족들은 그녀의 모습과 역사적 위상을 지역의 다른 위대한 여전사들과 비교합니다. 로마의 침략으로부터 팔미라를 지키려 한 제노비아, 미트리다테스 6세의 첩으로 공화정 로마에 맞선 폰투스의 지도자 자리를 계승한 힙시크라테스,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군에 맞서 자신의 함대를 이끈 할리카르나소스의 여왕 아르테미시아, 그리고 신화 속 아마존의 여왕 펜테실레이아까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