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베르사유 조약(1919): 제1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독일에 대한 징벌

베르사유 조약(Treaty of Versailles)은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과 패전국 독일 사이에 체결된 강화 조약입니다.

조약 체결의 절차는 1918년 11월 11일 휴전 협정에서 시작되어, 1919년 6월 28일 공식 서명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개요

베르사유 조약은 프랑스의 보복주의, 국경선 재획정, 배상금 설정, 그리고 국제연맹 창설을 핵심 특징으로 합니다.

참여국

6개월에 걸친 협상에는 브라질을 포함한 27개국의 대표단 70명이 참여했습니다.

패전국인 독일은 협상 과정에서 배제되었습니다. 러시아 역시 1918년 독일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이미 체결했기 때문에 회담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 영국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프랑스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가 주도한 끝에 베르사유 조약은 1919년 6월 28일 최종 체결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조약의 주요 협상국 중 하나였던 미국은 의회가 문서를 비준하지 않았고, 국제연맹에도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미국은 1921년 베를린 조약을 통해 독일과 별도의 양자 간 합의를 맺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베르사유 조약(1919): 제1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독일에 대한 징벌

프랑스의 보복주의

프랑스는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당한 패배에 대한 설움을 풀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우연의 일치처럼 베르사유 조약은 바로 그 전쟁을 종식시키던 조약이 서명된 장소, 즉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 홀에서 체결되었습니다.

베르사유 조약의 핵심 조항인 제231조는 독일에게 '전쟁 책임'을 명시했습니다.

독일은 발생한 모든 손해에 대해 완전하고 유일한 책임을 지게 되었으며, 따라서 전쟁에 연루된 국가들, 특히 협상국(삼국협상)의 피해를 배상할 의무를 지게 되었습니다.

배상금과 영토 상실

조약에 따라 독일은 매년 다음과 같은 물자를 제공해야 했습니다.

  • 프랑스에 석탄 700만 톤
  • 벨기에에 석탄 800만 톤

1921년에는 전쟁 손실에 대한 배상금이 330억 달러, 즉 2,690억 마르크로 산정되었습니다.

이후 배상금은 1,320억 마르크로 감액되었지만, 전쟁 희생자 유족과 피해자에 대한 연금 지급분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프랑스인이었습니다.

이러한 과중한 배상 의무는 독일 경제를 1920년대 내내 지속되는 경제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또한 독일은 유럽 내 영토의 13%를 잃었고, 이로 인해 약 700만 명의 국민을 상실했습니다. 구체적인 영토 변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 알자스-로렌 지역은 프랑스에 반환
  • 쇠네르윌란(북슐레스비히) 지역은 덴마크에 이양
  • 포젠, 잘다우, 바르미아, 마주리 등 프로이센 지역은 폴란드에 편입
  • 흘루친스코 지역은 체코슬로바키아에 이양
  • 오이펜과 말메디 지역은 벨기에 영토로 편입
  • 자르 지역은 15년간 국제연맹의 관리 하에 놓임

아프리카, 아시아, 태평양에 걸쳐 분포한 7만 km² 이상 규모의 독일 식민지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아프리카의 독일령 식민지는 영국, 벨기에, 프랑스 사이에 분할되었습니다.

베르사유 조약(1919): 제1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독일에 대한 징벌

군비 축소

군사 분야에서는 독일 국민의 무장 해제, 징병제 폐지, 그리고 상비군을 자원입대병 10만 명 규모로 축소하는 것이 결정되었습니다.

독일의 전쟁 산업 재건을 차단하기 위해 전차와 대구경 화기의 제조가 금지되었고, 라인강 좌안은 비무장 지대로 지정되었습니다.

해군 역시 최대 1만 5천 명의 선원으로 규모가 제한되었으며, 독일의 항공 부대는 해체를 명령받았습니다. 다수의 함선은 승전국에 인도되었습니다.

군사학교와 준군사 조직 또한 모두 해산되었습니다. 이는 군사적 전통을 국가적 자랑으로 여겨 온 독일에게 가혹한 타격이었다고 평가됩니다.

몇 달 뒤에는 생제르맹앙레 조약을 통해 오스트리아도 군사력을 3만 명 수준으로 축소하도록 강요당했습니다.

결과

바이마르 공화국을 대표하여 헤르만 뮐러 외무장관과 요하네스 벨 운수장관이 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이후 베르사유 조약은 1920년 1월 10일 국제연맹에 의해 공식 비준되었습니다.

요컨대 이 조약은 극도로 가혹한 정치·경제·군사적 성격을 띠며, 440개 조항 전체가 독일에 대한 엄중한 선고문과 같았습니다.

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 조약은 적어도 간접적으로 바이마르 공화국(몰락한 독일 제국을 대체한 정권)의 붕괴를 불러왔고, 나아가 1933년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의 집권이라는 더 큰 비극의 씨앗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