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릭 앙리 발터(Frédéric Henri Walther) 백작은 1761년 6월 20일 오벤하임(Obenheim)에서 태어나 1813년 11월 24일 자를란트(Saarland)의 쿠젤(Kusel)에서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장군이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시대를 관통하며 근위 기병 연대장으로서 굴지의 명성을 쌓았다.
군 입대와 혁명 전쟁 시기
발터는 1781년 베르셰니 경기병 연대(Bercheny Hussars)에 입대하며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792년에는 소위에서 대위로 진급했으며, 이듬해인 1793년 3월 18일 네르빈덴(Neerwinden)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다. 이후 북부군(Armée du Nord)에서 알프스군과 이탈리아군으로 소속을 옮겼고, 1793년 10월부터 준장(brigadier general) 계급으로 오제로(Augereau) 휘하의 기병대를 지휘했다.
나폴레옹 시대의 활약
1800년 발터는 오스트리아 원정에서 빛나는 활약을 펼쳤으며, 호엔린덴(Hohenlinden)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산토도밍고(Santo Domingo) 원정에 지명되었으나 실제 출발하지는 않았다. 1803년 사단장(general of division)으로 승진한 그는 아우스터리츠(Austerlitz) 전투에서 용기병(dragoons) 선두에 서서 돌격하다가 다시 한번 부상을 입었다.
1806년 2월 황제의 시종관(chamberlain)이 된 그는 제국 근위대 기마척탄병(horse grenadiers)의 중령(major-colonel)으로 임명되어 프로이센과 폴란드 전역에 참전했다. 특히 아일라우(Eylau) 전투에서 결정적인 기병 돌격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제국 백작과 후반 전역
1808년 제국 백작(comte de l'Empire)에 임명된 발터는 잠시 스페인에 파견된 뒤, 에슬링(Essling)과 바그람(Wagram) 전투에서 다시 한번 뛰어난 지휘력을 과시했다. 러시아 원정의 참혹한 철수 과정에서도 그는 거의 모든 척탄병들을 무사히 인솔해 귀환시키는 기록적인 성과를 남겼다.
1813년에도 발터는 기마척탄병을 이끌고 작센(Saxony) 전선에서 계속 싸웠으며, 하나우(Hanau) 전투에서 바이에른군을 격파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메츠(Metz)로 향하던 길에 갑자기 병을 얻어 5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사후 평가와 유산
나폴레옹은 그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발터를 판테온(Panthéon)에 안장하도록 명했다. 또한 그의 이름은 파리 개선문(Arc de Triomphe)에 새겨져 후세에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