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ius, Altius, Fortius(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 엄밀히 말해 고전 문구는 아니지만,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이 1896년 제1회 근대 올림픽을 위해 채택한 이 슬로건은 프랑스 한 학교의 교훈에서 따온 것입니다. 오늘은 세 형용사 중 첫 번째인 '더 빠르게'에 초점을 맞춰, 속도를 무기로 삼았던 고대 최고의 스타 선수 중 한 명인 로도스의 레오니다스(Leonidas of Rhodes)를 심층적으로 조명해 보겠습니다.
레오니다스의 삶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몇 가지 기본적인 사실과 그의 스포츠 성취가 거의 전부입니다. 그는 기원전 188년경 그리스 로도스 섬에서 태어났으며, 아마도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운동선수라는 길을 선택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고대 그리스에서 운동선수는 노예 신분이 많았던 로마와 달리 자유 시민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유 시민이라는 것은 노동에서 벗어나 여가를 누릴 수 있다는 의미였는데, 사실상 상류층만이 감당할 수 있는 특권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로도스가 스포츠 분야에서 훌륭한 전통을 지닌 섬이었고 여러 왕조급 운동 가문을 배출했다는 점에서, 레오니다스의 스포츠에 대한 열정 역시 가족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봅니다. 대표적인 예가 당대 4대 경기(올림피아, 피티아, 네메아, 이스트미아)를 모두 석권하고 올림피아에 동상이 세워졌으며, 시인 핀다로스가 그의 공적을 찬양한 유명한 복서 디아고라스(Diagoras)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디아고라스는 아들들(다마게토스, 아쿠실라오스, 도리에우스)이 판크라티온(복싱과 레슬링이 결합된 종목)에서 올림픽 챔피언에 오르고 그를 어깨에 메우고 승리를 축하하던 순간, 관중이 외친 '이제 죽어도 좋다, 디아고라스여! 올림포스에 오를 생각은 하지 말라!'는 환호 직후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집니다.
물론 스스로를 갈바람처럼 헌신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긴 운동선수가 레오니다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판크라티온 챔피언 파르살리아의 아기아스, 역도선수 비본과 에우마스타스, 아테네의 5종 경기 선수 칼리포스, 복서 클레오메데스(심판의 불리한 판정에 분노해 그를 살해했고, 도주 과정에서 학교를 받치던 기둥을 무너뜨려 수십 명의 아이들까지 함께 죽인 일로 악명을 얻었습니다), 역시 권투선수였던 클레이토마코스, 6번의 올림픽 우승에 빛나는 전쟁 영웅 크로토나의 밀로까지… 목록은 끝이 없습니다.
사실 레오니다스가 혁명적인 선수로 평가받는 이유는 거둔 승리의 숫자만이 아니라, 그것을 이뤄낸 방식 때문입니다. 당시 단거리 선수와 지구력 선수 사이에는 뚜렷한 경계가 존재했는데, 그는 이 구분을 완벽하게 깨뜨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가장 권위 있는 세 종목에서 승리했습니다. 약 200m를 달리는 스타디온(stadion), 그 두 배 거리인 디아울로스(diaulos), 그리고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알몸으로 경쟁하던 앞의 두 종목과 달리 투구·흉갑·방패 등 중장보병 갑옷을 완비하고 달려야 했던 호플리토드로모스(hoplitodromos)입니다.
레오니다스는 기원전 164년 올림피아드에서 세 종목을 모두 석권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160년, 기원전 156년, 기원전 152년 대회에서도 같은 위업을 반복하며 무적의 신화를 만들어냈습니다. 마지막 우승 당시 그의 나이는 이미 36세로, 오늘날 기준보다 훨씬 고령이었음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기록입니다. 고대에는 메달이 수여되지 않고 최고의 영웅에게 올리브 화관과 동상이 헌정되었습니다. 통산 12승을 거둔 그에게는 '신의 속도를 지닌 자'라는 문구와 함께 반신(半神)으로 추앙받는 조각상이 세워졌습니다.

엘리스의 코레보스는 스타디온 경주에서 승리한 최초의 올림피오니케(olimpionike, 올림픽 절대 우승자)였습니다. 스파르타의 키오니스처럼 개인 종목에서 여러 차례 연속으로 두각을 나타낸 선수도 있었는데, 그는 스타디온과 디아울로스에서 올림픽 3연속 제패를 달성했습니다. 크로토나의 아스틸로스 역시 스타디온과 디아울로스를 지배했지만, 마지막 승리를 시라쿠사 대표 자격으로 거두면서 격분한 고향 동포들이 그의 집을 불태워 버렸습니다.
레오니다스의 특별함은 트리아스테스(Triastes, 삼관왕)라는 찬사로도 드러납니다. 같은 대회에서 세 경주를 모두 이긴 선수에게 주어지는 이 영예를 안은 선수는 단 7명뿐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고대를 통틀어 나머지 6명 모두 이 타이틀을 한 번씩만 차지한 반면, 레오니다스는 네 번이나 연속으로 달성했다는 사실입니다. 나머지 6인은 연대순으로 펠레네의 파나스, 크로토나의 아스틸로스, 아크리온의 니코클레스, 밀레토스의 헤카토무노스, 케라모스의 폴리테스, 크산토스의 헤르모게네스로, 모두 스타디온, 디아울로스, 호플리토드로모스에서 승리했습니다. 단, 폴리테스만은 호플리토드로모스 대신 가장 늦게 도입된 최장거리 경주 돌리코스(dolichos)(18~24플레트론)에서 우승했습니다.
당연히 로도스의 이 영웅은 생전에도 사후에도 수차례 찬사를 받았습니다. 동시대 아테네의 궤변철학자 필로스트라토스는 저서 체조론(Gymnasticus)에서 그의 다재다능한 신체적 재능을 높이 평가했고, 당대 지리학자 파우사니아스는 그를 '가장 유명한 운동선수'라고 불렀습니다.
올림픽 12관왕이라는 기록이 깨지기까지는 무려 2000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미국의 수영 선수 마이클 펠프스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금메달 13개를 목에 걸며 마침내 새 역사를 썼습니다. 하지만 펠프스에게는 두 가지 유리한 조건이 있었습니다. 일부 금메달이 계영 종목에서 나왔다는 점, 그리고 젊은 나이에 각 경기 사이 최소 하루의 휴식일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반면 레오니다스를 비롯한 고대 선수들은 모든 경기를 하루 안에 소화해야 했습니다. 그야말로 다른 시대의 기록이었던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