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희곡, 아이스킬로스 『페르시아인』(기원전 472년) — 살라미스 해전 생존자가 쓴 비극

고대 그리스 극장의 기원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인물이 있습니다. 이름이 알려진 최초의 배우이자 비극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테스피스(Thespis), 그리고 그의 동시대인이자 동료였던 프리니코스(Phrynicus)입니다. 두 사람은 모두 기원전 6세기 후반부터 기원전 5세기 초에 걸쳐 활동했으며, 역사적 주제를 다룬 비극이나 2부 구성 같은 선구적인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테스피스와 프리니코스의 뒤를 잇다

이들의 뒤를 이어 세기 초 무렵 극작가로서 경력을 시작한 인물이 바로 아이스킬로스(Aeschylus)입니다. 그는 기원전 484년 열린 극 축제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는데, 결승에서 꺾은 상대가 다름 아닌 프리니코스 자신이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살라미스 해전을 직접 겪은 극작가

아이스킬로스는 마라톤 전투(기원전 490년), 살라미스 해전(기원전 480년), 플라타이아 전투(기원전 479년)에서 페르시아군과 맞선 참전 용사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전쟁 경험을 작품에 그대로 녹여냈고, 그 결실 중 하나가 기원전 472년에 발표된 페르시아인(The Persians)입니다. 이 작품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희곡일 뿐만 아니라, 작가가 살아 있던 당대의 사건을 소재로 삼은 유일한 작품으로도 남아 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희곡, 아이스킬로스 『페르시아인』(기원전 472년) — 살라미스 해전 생존자가 쓴 비극

프리니코스가 연 길, 아이스킬로스가 완성하다

당대 사건을 소재로 한 비극을 처음 쓴 사람은 프리니코스였습니다. 기원전 494년의 밀레토스 함락이 그것입니다. 22년 뒤인 기원전 472년, 아이스킬로스는 페르시아인으로 그의 발자취를 따랐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프리니코스 역시 속편 개념을 먼저 시도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페니키아 여인들이라는 제목의 후속 작품을 썼는데, 이는 아이스킬로스가 살라미스 승전을 다루기 불과 4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레기온의 글라우코스는 기원전 400년경, 아이스킬로스가 페르시아인의 서두에서 프리니코스의 페니키아 여인들을 모방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페르시아인 이전의 작품들은 대부분 유실되어 원문을 확인할 수 없지만, 다른 작가들의 인용 덕분에 상당 부분을 복원해 낼 수 있습니다.

역사상 첫 3부작, 페리클레스의 후원

아이스킬로스는 프리니코스가 개척한 '속편'의 개념을 한 단계 발전시켜 3부작 구조를 완성했습니다. 페르시아인은 그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었으며, 나머지 두 편은 unfortunately 유실되었습니다. 이 3부작의 재정을 후원한 이는 당시 젊은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였습니다. 덕분에 아이스킬로스는 기원전 472년 3월, 겨울이 저물 무렵 아테네에서 열린 대디오뉘시아 축제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은 피네우스로, 이아손과 아르고 원정대가 같은 이름의 왕을 구출하는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추정됩니다. 세 번째 작품 글라우코스는 신화 속 인물을 소재로 했거나 플라타이아 전투를 배경으로 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세 작품은 '천벌'이라는 주제로 하나로 묶였을 것으로 보이며, 크세르크세스가 그리스 원정을 통해 신들의 분노를 샀다는 설정이 그 핵심입니다.

수사의 장로들로 시작되는 특이한 서막

페르시아인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시작합니다. 통상 합창대는 극이 어느 정도 진행된 뒤에 등장하는데, 이 작품은 페르시아의 도시 수사(Susa)의 장로들로 구성된 합창대와 함께 막이 오릅니다. 여기에 크세르크세스의 어머니 아토사가 합류해 아들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아토사가 들려주는 꿈 이야기는 유럽 연극 최초의 '꿈 장면'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희곡, 아이스킬로스 『페르시아인』(기원전 472년) — 살라미스 해전 생존자가 쓴 비극

이윽고 페르시아군의 패배 소식을 전하는 전령이 도착하고, 아토사는 합창대에게 고인이 된 남편 다리우스를 불러 조언을 구해 달라고 청합니다. 다리우스의 망령이 나타나 모든 참화의 원인이 크세르크세스의 '휴브리스(hybris, 오만·과욕)'에 있음을 설명합니다. 작품 막바지에야 등장해 통곡하는 크세르크세스는 마침내 자신의 패배 원인을 받아들입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희곡, 아이스킬로스 『페르시아인』(기원전 472년) — 살라미스 해전 생존자가 쓴 비극

적을 조롱하지 않은 비극, 관객의 연민을 이끌다

프리니코스의 밀레토스 함락과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인의 결정적 차이는 시선의 방향에 있습니다. 프리니코스가 그리스인을 찬양하며 적을 조롱했다면, 아이스킬로스는 오히려 관객이 패배한 페르시아인들을 연민하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단테와 T.S. 엘리엇까지, 2천 년을 이어온 영향력

이 희곡은 고대 전반에 걸쳐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특히 페르시아와 전쟁을 벌이던 로마 제국과 비잔틴 제국 시대에는 수많은 공연이 이루어졌습니다. 코미디 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페르시아인 발표 약 70년 뒤에 쓴 희곡 개구리에서 아이스킬로스에게 "나의 걸작 페르시아인은 언제나 너희에게 적을 물리치고자 하는 불타는 열망을 불러일으켰다"라는 대사를 입혔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희곡, 아이스킬로스 『페르시아인』(기원전 472년) — 살라미스 해전 생존자가 쓴 비극

이후 많은 작가들이 페르시아인, 특히 패배를 알리는 전령의 연설에서 문구를 가져갔습니다. 그중에는 단테의 신곡도 포함됩니다. 또한 T.S.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나는 죽음이 그토록 많은 이들을 거두어 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라고 썼는데, 이는 아이스킬로스 희곡 432행에서 전령이 내뱉는 탄식과 맞닿아 있는 문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