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대공황과 농민의 분노: 페니 경매로 농장을 지켜낸 사람들

대공황과 농민의 분노: 페니 경매로 농장을 지켜낸 사람들

1929년 시작된 대공황으로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면서 미국 중서부 농민들은 생계를 유지하기조차 어려운 처지에 몰렸다. 낮아진 곡물값, 갚지 못하는 모기지(담보대출), 그리고 농장을 빼앗길 위기 속에서 농민들의 분노는 점점 커져만 갔다.

농산물 가격 방어를 위한 집단 저항

양대 정당 모두 당시 가장 강력한 농민 단체였던 농민 휴일 협회(Farmers Holiday Association)와 원만하게 접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 협회는 정부가 곡물을 비축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농산물 가격을 유지하고, 시장 유통을 일시적으로 차단해 가격 회복을 압박하려 했다.

1932년, 옥수수 재배의 중심지인 아이오와와 네브래스카에서는 이러한 운동이 결국 폭력 사태로 번졌다. 트럭이 전복되고 우유가 도로에 쏟아졌으며, 시위에 나선 농민들은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분노를 주시하던 공산주의자들

농민들의 분노와 절망을 정치적 기회로 삼을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공산주의자들은 행동위원회를 조직했다. 그리고 조직의 핵심 대표 중 한 명인 엘라 리브 블루어(Ella Reeve Bloor)를 이 지역에 파견했다.

블루어는 농민 휴일 협회를 떠난 일부 농민들 사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그녀는 '페니 경매(penny auction)'라는 독특한 방식을 통해 담보 압류를 막는 데 성공했다. 페니 경매란 어떤 물건도 몇 센트 이상으로 값이 오르지 않도록 하는 경매 방식이다.

고작 5달러 35센트짜리 첫 경매

첫 페니 경매는 네브래스카에서 열렸다. 경매 총액은 고작 5달러 35센트에 불과했고, 지역 은행은 극도로 마지못해 이 금액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경매 현장에 분노한 농민들이 대거 몰려드는 바람에 입찰 경쟁이 일어나지 못했고, 담보권자 역시 이 조건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처럼 페니 경매는 압류된 농장을 되찾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혁명적 수단은 괜찮지만, 좌파 운동은 부담스럽다

흥미로운 점은 중서부의 가난한 농민들의 태도다. 자신의 재산과 터전을 지키는 문제에 있어서는 과감히 혁명적인 방식을 채택하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 그러나 정작 좌파 운동과 손을 잡고 함께 행동하는 것에 대해서는 끝내 경계심을 버리지 못했다.

이러한 모순된 태도는 대공황 시기 미국 농촌 사회의 복잡한 심리를 잘 보여준다. 그들은 급진적인 저항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좌파 이념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지는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