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미얀마 군사 쿠데타: 2021년 2월,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다

미얀마 군사 쿠데타는 2021년 2월 발생하여, 이 아시아 국가가 21세기에 겪어온 가느다란 민주화 실험을 중단시켰습니다. 민 아운 흘라인(Min Aung Hlaing) 장군이 이끄는 새 정부는 국민민주연맹(NLD) 정부를 전복하고, 정부 수반 아웅 산 수 치를 비롯한 핵심 인사들을 체포했습니다. 이 쿠데타는 국내외에서 극심한 반발과 비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미얀마는 어디에 있는 나라일까?

2021년 초, 군사 쿠데타로 인해 미얀마는 국제 뉴스의 중심에 섰습니다. 하지만 미얀마가 정확히 어디에 위치한 나라인지 알고 계신가요?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미얀마는 아시아 대륙 남동부에 자리한 국가로, 중국·인도·방글라데시·태국·라오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면적은 약 676,578㎢로 한반도의 약 3배에 달하며, 인구는 약 5,500만 명으로 대한민국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현재 공식 국명은 '미얀마 연방공화국'이며, 예전에는 '버마(Burma)'라고 불렸습니다. '버마'라는 이름은 이 나라 최대 민족인 버마족과 직결된 명칭입니다. 미얀마는 다민족 국가로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으며, 그중 버마족이 전체 인구의 약 70%를 차지합니다.

미얀마 사람들은 버마인이라 불리며, 인구의 약 70%가 여전히 대도시 밖 농촌 지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최대 도시는 인구 500만 명의 양곤으로, 과거 수도였던 곳입니다. 현재의 수도는 네피도로, 인구는 약 110만 명입니다.

공용어는 버마어이며, 정부는 샨어, 카렌어 등 여러 지역 언어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정치 구조 이해하기

2021년 초까지 미얀마는 부분적인 민주주의 체제를 갖춘 의원내각제 공화국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오랜 권위주의 전통을 고려하면 이는 분명한 진전이었는데, 실제로 1962년부터 2011년까지 미얀마는 군부 독재 체제 아래 놓여 있었습니다.

2011년부터 미얀마에서는 일련의 개혁 조치가 시행되며 정치적 개방의 문이 열렸습니다. 이 개방을 주도한 세력은 군부와 직접 연계된 정당인 연대발전당(USDP)이었습니다.

군부는 정치에서 일부 물러나 권력을 민간에 이양했지만, 여전히 의회 의석의 25%를 보유하고 국가 전략 부처에도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게다가 현행 헌법(2008년 제정) 자체가 군부 손으로 작성된 것이었습니다.

2015년에는 총선이 실시되었습니다. 선거의 양대 축은 연대발전당(USDP)과 국민민주연맹(NLD)이었습니다. NLD는 1980년대부터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미얀마의 역사적 정당으로, 당의 상징인 아웅 산 수 치는 1989년부터 2010년까지 정치범으로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2015년 총선에서 NLD는 의회 다수 의석과 대통령직을 차지하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아웅 산 수 치는 '국가고문'직을 맡아 사실상의 국가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이 직위는 그녀가 대통령 자격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외국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대통령 출마가 제한됨) 특별히 신설된 것입니다.

NLD와 아웅 산 수 치 정부는 군부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군부의 특권을 건드리지 않았고, 군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도 묵인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실제로 아웅 산 수 치는 2017년부터 시작된 로힝야족 집단학살을 군부가 저지르도록 방관했다는 이유로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군사 쿠데타의 발생

2021년 2월 1일, 군사 쿠데타가 실행되면서 미얀마의 정치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군부는 수도 네피도를 장악하고 도시 진입로를 통제했으며, 거리와 주요 전략 시설들을 점거했습니다.

장관, 지식인, 예술가, 정부 활동가들은 물론, 아웅 산 수 치와 당시 대통령 우 윈 민트(U Win Myint)까지 잇달아 체포되었습니다. 미얀마 언론은 일시 폐쇄되었고, 영공은 봉쇄되었으며, 1년 기간의 비상사태가 선포되었습니다.

군부는 왜 쿠데타를 일으켰을까?

군부가 나라를 장악하면서 민 아운 흘라인 장군이 새로운 통치자로 부상했습니다. 군이 정부에 반기를 들고 쿠데타를 감행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20년 11월 총선 결과였습니다. 이 선거는 군부와 USDP에게 굴욕적인 결과였는데, NLD가 경쟁한 의석의 83%를 휩쓸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NLD가 압도적인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뜻이며, 미얀마 군부에 커다란 불안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국제 관측통들은 군부가 지역 정치에서 자신들의 영향력 상실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어떤 식으로든 정부를 통제 아래 유지하기 위해 개입했다고 분석합니다.

선거 이후 군부와 USDP는 선거가 조작되었다며 신뢰성을 훼손하려 시도했지만, 이러한 주장은 입증되지 않아 국민들의 설득에 실패했습니다. 국제 관측단 역시 부정 행위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러한 주장에 별다른 무게를 두지 않았습니다.

쿠데타 이후의 상황

군정은 1년간 권력을 유지한 뒤 새로운 선거를 실시해 새 지도부를 선출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국가는 비상사태 하에 놓이게 되며, 이는 군부가 권위주의적으로 나라를 통치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미얀마 군사 쿠데타는 국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국민들은 며칠에 걸쳐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NLD 정부의 복원과 아웅 산 수 치 및 다른 정치범들의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군부는 이러한 민중 시위에 폭력으로 대응했습니다.

경찰의 강경 진압과 인터넷 차단 같은 조치들이 시위를 막기 위해 동원되었습니다. 국제적으로도 군부의 행동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고, 여러 나라 정부가 쿠데타를 공개적으로 규탄했습니다. 미국은 쿠데타에 연루된 군부 인사들과 경제 전반에 제재를 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후, 미얀마는

약속과 달리 군부는 비상사태를 반복해서 연장하며 선거를 무기한 미루었고, 아웅 산 수 치는 여러 혐의로 장기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군부에 저항하는 무장 세력과 민주파 세력이 결집하면서 미얀마는 길고 참혹한 내전의 늪에 빠졌으며, 민주화를 향한 국민의 염원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Shutterstock (360b, Adirach Toumla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