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하마스와 파타의 충돌: 팔레스타인 내분의 전개 과정

국제적 고립에 빠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2006년 하마스가 정권을 장악하고 당 소속 인사를 총리로 임명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NA)는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는 운명을 맞았습니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은 연간 10억 달러 규모의 재정 지원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이는 자치정부 전체 예산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으로, 그 결과 팔레스타인 정부는 공무원들의 급여조차 지급하지 못하는 극심한 재정난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연립정부 구성 시도와 압바스의 선택

EU와 미국의 경제 제재를 해제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자 파타(Fatah) 소속 정치인인 마흐무드 압바스(Mahmoud Abbas)는 연립정부 구성을 제안했습니다. 이는 하마스에게 이스라엘이 제시한 조건들을 받아들이고 평화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도록 압박하는 전략이었습니다.

유혈 충돌의 시작

그러나 상황은 오히려 악화되었습니다. 2006년 말, 압바스는 입법위원회(의회)를 해산하고 선거를 앞당기겠다고 공개적으로 위협했습니다. 이 선언이 도화선이 되어 파타 지지 세력과 하마스 지지 세력 간의 무력 충돌이 곳곳에서 벌어졌습니다. 불과 첫 두 달 동안만 75명이 목숨을 잃는 참극이 일어났습니다.

메카 협정과 연립정부의 붕괴

2007년 2월, 압바스와 하마스 출신 총리 이스마일 하니예(Ismail Haniyeh)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재 아래 메카 협정(Mecca Accord)에 서명했습니다. 이 협정으로 양파티는 국민화해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했고, 갈등은 최소한 일시적으로 진정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같은 해 6월부터 7월 사이, 하마스 무장세력이 가자지구를 무력으로 완전히 장악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에 압바스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하마스가 주도하던 연립정부를 해체했으며, 결국 팔레스타인은 요르단강 서안의 파타 세력과 가자지구의 하마스 세력으로 분단되는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