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6월, 나치 독일은 약 360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 소련을 침공하는 바르바로사 작전(Operation Barbarossa)을 개시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격렬한 국면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작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대규모로 진행된 군사 작전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배경
아돌프 히틀러는 1920년대 정치 활동 초기부터 소련의 볼셰비즘을 독일 민족의 최대 적으로 간주했으며, 연설과 저술을 통해 이를 반복적으로 강조했습니다. 1933년 독일의 권력을 장악한 뒤에는 소련과의 전쟁이 독일 민족의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사상을 국민들에게 주입했습니다.
나치 독일과 소련 간의 이러한 이념적 대립 때문에 1939년 당시 유럽의 긴장된 정세 속에서 양국 간 충돌은 시간문제로 여겨졌습니다. 그렇기에 두 나라가 불가침 조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 협정은 '독소 불가침 조약' 또는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1939년 8월, 즉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며칠 전에 체결되었습니다. 이 조약을 통해 양국은 10년간의 평화 협정을 맺었고,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에도 이를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소련과 독일 간의 일련의 무역 협정이 포함되었으며, 비밀 의정서를 통해 폴란드를 포함한 동유럽 영토를 양국이 분할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이 협정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했습니다. 독일과 소련 모두 두 나라 간의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일에게 이 협정은 소련으로부터 필수 자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서부 전선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했습니다. 소련에게는 미래의 충돌에 대비해 방어력을 강화할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조약 체결 며칠 후,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했고,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알린 사건이 되었습니다. 1939년부터 1941년 중반까지 독일은 폴란드, 노르웨이, 프랑스 등 여러 국가를 침공하며 상당한 승전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이러한 승리는 혁신적인 전술인 전격전(블리츠크리크)에 크게 힘입은 것이었습니다.
소련 침공
1941년부터 본격화된 소련 침공 작전은 인류 전쟁사에서 손꼽히는 초대형 작전이었습니다. 바르바로사 작전은 이념적으로는 소련 볼셰비즘을 격파하고 소멸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군사적·경제적으로는 독일 경제를 지속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침공이었습니다.
소련은 전쟁 수행에 중요한 풍부한 자원을 보유한 국가였습니다. 특히 코카서스 지역의 석유와 광물 자원,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곡물 생산은 독일이 전쟁을 지속하고 국민의 식량난을 막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이러한 목표 아래 공격은 1941년 6월로 계획되었고, 300만 명이 넘는 병력이 동원되었습니다. 공격 전 소련의 지도자 요제프 스탈린은 독일의 침공 계획에 관한 수많은 경고를 받았습니다. 영국 정보기관과 다양한 소련 첩보원들이 경고를 전달했지만, 스탈린은 임박한 독일의 공격에 대한 이러한 경고들을 모두 무시했습니다.
실제로 스탈린은 총 80회 이상의 경고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취한 조치는 모스크바에 대공포를 설치하고 붉은 군대에 80만 명의 예비군을 소집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소련 지도부의 이러한 소극적 대응은 독일군이 국경을 쉽게 돌파하고 소련 영토 수천 킬로미터 깊숙이 진격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로 설명됩니다.
공격은 1941년 6월 22일 새벽, 300만 명이 넘는 병력과 함께 개시되어 신속하게 국경 지대를 점령했습니다. 많은 독일 장성들은 이 작전의 난이도를 우려하여 반대 입장이었으며, 일반적으로 소련에 대한 승리는 신속하게 달성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적의 저항이 재정비되고 독일의 자원이 고갈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에 따라 작전 성공을 위한 4대 목표가 설정되었습니다.
- 소련 북부의 산업 중심지인 레닌그라드의 산업 기반 확보
- 국가의 행정 중심지이자 수도인 모스크바 점령
- 키예프 주변의 곡물 생산지 확보, 이후 스탈린그라드를 거쳐 소련의 광물 자원 지대 장악
이 전략은 히틀러가 직접 수립한 것으로, 독일군을 세 개의 대규모 부대로 분산 운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대다수 독일 참모들은 모스크바에 대한 단일 집중 공격을 추진하라고 히틀러를 설득하려 했지만, 나치 지도자는 병력 분산을 선택했습니다. 잘못된 판단으로 비판받은 이 전략은 거의 성공 직전까지 갔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정복은 빠르고 번개같이 이루어져야 했고, 실제로 거의 그에 근접했습니다. 독일군은 레닌그라드를 약 900일간 포위했고, 키예프를 손쉽게 함락했으며, 스탈린그라드를 거의 점령할 뻔했고 모스크바 교외까지 진출했습니다. 그러나 독일군의 공세는 자원 부족, 광활한 소련 영토와 소련군의 저항, 그리고 혹독한 현지 기후로 인해 힘을 잃어갔습니다.
독일의 패색은 이미 1941년 11월~12월경 나치 지도부에도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히틀러에게 소련과의 대립을 외교적으로 해결하자는 건의가 제기되었지만, 그는 끝내 승리를 믿으며 공격을 지속했습니다. 결국 독일은 스탈린그라드 전투, 그리고 이후 쿠르스크 전투에서 결정적인 대패를 겪으며 동부 전선의 주도권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참고 문헌: BEEVOR, Antony. The Second World War. Rio de Janeiro: Record, 2015, p.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