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메레르급 전열함 '드루아 드 롬'
74문 함포를 갖춘 테메레르급(Téméraire class) 전열함 '드루아 드 롬(Droits de l'Homme, 인간의 권리)'은 1794년 5월 29일 프랑스 로리앙(Lorient) 항에서 건조되어 진수되었으며, 레몽 드 라크로스(Raymond de Lacrosse) 대령이 함장을 맡았다. 이 배는 프랑스군을 아일랜드 해안에 상륙시키기 위한 원정 작전에 배속되었고, 앙베르(Humbert) 장군이 지휘하는 프랑크 군단 병력 549명을 탑재하고 있었다.
폭풍을 뚫고 아일랜드 해안까지
'드루아 드 롬'은 프랑스 함대 일부를 파괴한 거센 폭풍우를 만났지만, 간신히 아일랜드 해안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8일 동안 해역을 순찰하며 영국 브릭선 컴벌랜드(Cumberland) 호와 칼립소(Calypso) 호를 나포했고, 프랑스 선박 중 하나라도 좌초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기 전에는 그곳을 떠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라크로스 함장은 임무를 마친 뒤 프랑스 해안으로 향하는 함대와 합류하기로 결심했다.
영국 프리깃 두 척과의 조우
공화력 5년 니보즈월 22일(1797년 1월 13일), 함장은 펑마르슈(Penmarch)에서 1도, 약 25리그 거리에 있다고 판단했다. 바로 그 순간, 44문 함포를 장착한 영국 해군 프리깃 인데파티거블(Indefatigable) 호가 상풍 위치에서 나타났고, 36문의 아마존(Amazon) 호가 그 뒤를 따랐다. 라크로스는 전투에 대비해 영국함들의 앞길을 가로질러 항해했다. 오후 3시경, '드루아 드 롬'은 새로 나타난 두 척의 범선에 의해 퇴로가 차단되자 프리깃들과의 교전을 결행했다.
치열한 포격전
전투가 시작되자 거센 풍랑 때문에 어느 배도 하부 갑판에 설치된 함포를 사용할 수 없었다. '드루아 드 롬'의 메인 탑세일 야드 하나가 부러지면서 두 개의 최상돛대를 잃었지만, 영국측은 이 약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인데파티거블 호와 '드루아 드 롬'은 포격과 머스킷 사격으로 측현을 주고받았고, 영국 프리깃은 근접하여 배를 제압하려 시도했다. 라크로스는 즉각 대응해 인데파티거블 호에 대한 접현 승선전을 감행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오후 6시 15분, 1시간 30분의 전투 끝에 아마존 호가 사거리 안으로 들어와 '드루아 드 롬'의 선체 측면에 일제 사격을 퍼붓고는, 인데파티거블 호와 함께 손상 수리를 위해 물러났다.
야간전과 지휘관의 부상
저녁 8시 30분, 영국함들이 다시 포문을 열었다. 범장(帆裝)의 우위를 바탕으로 '드루아 드 롬' 주위를 계속 선회하며 측현 사격을 가했다. 라크로스는 탑재한 보병 병력에 기대어 두 적함 중 하나를 붙잡아 승선전을 강제하고, 다른 한 척이 구원하러 나오도록 유도해 역시 승선전의 표적이 되게 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드루아 드 롬'은 미즌마스트(후돛대)를 잃었고, 영국 프리깃들은 접근을 시도했지만 함포 사격에 밀려 물러났다. 오전 1시경, 샤틀렌(Chatelain) 중위는 폭발탄 파편에 팔이 으스러지는 중상을 입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라크로스 함장 역시 명중한 포탄이 튕겨 나온 파편에 왼쪽 무릎을 맞았다. 그는 승무원들에게 프랑스기를 끝까지 내리지 않겠다고 맹세시킨 뒤, 지휘권을 부관에게 넘겼다.
좌초
전투는 4시간 더 이어졌다. 오전 6시경, '드루아 드 롬'의 감시병이 해안을 발견했고, 배는 육지로 향하려던 중 전투에서 손상됐던 포마스트와 선수 사장이 부러져 버렸다. 돛대를 모두 잃고 닻과 키까지 파손된 '드루아 드 롬'은 결국 파도에 밀려 해안으로 내몰렸다.
아마존 호는 해안에서 산산이 부서져 승무원들은 포로로 잡혔다. 반면 인데파티거블 호는 요행히 펑마르슈 암초 지대를 돌파해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아디에른 만의 구조 작전
'드루아 드 롬'은 니보즈월 25일 오전 7시 아디에른 만(Baie d'Audierne)에 좌초했다. 폭풍 속에서 구명용 작은 배들은 물결에 휩쓸려 출항조차 하지 못했다. 여러 선원들이 왕복 수송을 시도하거나 도움을 청하러 가다가 목숨을 잃었다. 25일 밤부터 26일로 넘어가는 밤 사이, 아디에른의 다섯 척의 배가 부상자와 약 400명의 선원·병사들을 실어 나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어진 폭풍으로 구조 작업은 5일간 중단되었다. 30일, 라크로스는 배에 단 한 명도 남지 않았음을 직접 확인한 뒤, 브레스트에서 파견된 코르벳함에 올라탔다.
전투 이후
이 고된 항해와 전투에서 보여준 지휘 능력을 인정받아, 라크로스는 훗날 제독 계급으로 승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