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앙곤(Angon): 작살 모양 촉을 가진 프랑크족의 독특한 투창

앙곤(Angon): 작살 모양 촉을 가진 프랑크족의 독특한 투창

앙곤(angon)은 촉이 작살(harpoon)처럼 생긴 프랑크족의 창이자 투창이다. 전쟁과 사냥에 모두 사용되었으며, 앵글족과 튀링겐족의 무덤에서도 이 무기가 출토된 바 있어, 프랑크족 전사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앙곤은 프랑크 시대의 무기 중 가장 희귀하면서도 가장 독특한 무기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무기를 처음 언급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비잔틴 제국의 역사가 아가티아스(Agathias)로, 그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대를 다룬 저서 『역사』 2권에서 이 투척 무기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앙곤은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창으로, 필요할 때는 던질 수 있을 뿐 아니라 방어와 공격에도 적합하다. 이 투창은 거의 전부 철로 만들어졌고 손잡이 부분만 나무로 되어 있다. 무기 끝(촉)에는 자루 쪽으로 구부러진 두 개의 갈고리가 달려 있는데, 마치 낚싯바늘의 갈고리와 상당히 닮았다.”

“앙곤이 적에게 던져져 살에 박히면, 상처를 치명적으로 만들지 않고는 뽑아낼 수 없을 정도로 깊이 걸려 버린다. 이 무기가 방패에 맞으면 그 안쪽 깊숙이 박혀 ‘송곳니’ 같은 갈고리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도 뽑아낼 수 없게 된다. 결국 앙곤은 방패에 매달린 채 끝부분이 땅을 쓸게 되는데, 이때 프랑크 전사는 앞으로 달려들어 창자루를 밟아 적의 몸을 드러낸 뒤 검으로 그를 베면 된다.”

“때로는 앙곤에 밧줄을 묶어 작살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이 경우 줄을 당겨 적을 검이 닿는 거리까지 끌어오기만 하면 된다.”

(555년 카실리눔 전투에서 나르세스가 프랑크족과 알레만니족 연합군을 격파한 전투에 대한 기록)

앙곤이라는 용어의 어원

‘앙곤’이라는 단어는 프랑스어에서 15세기 이전에는 확인되지 않으며, 당시에는 “일종의 갈고리”를 의미했다. 16세기에 이르러 “갈고리 두 개가 달려 있어 프랑크족이 사용했던 일종의 무기”라는 의미로 나타난다. 이 용어는 뒤장(Du Cange)에 의해 라틴어로 angon(es) 형태로 기록되었으며, “고대 프랑크족의 무기”라는 뜻으로 쓰였다.

이 저지 라틴어 단어의 어원은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고대 프랑크어 *ango(“갈고리”)에서 차용된 것일 가능성이 있는데, 이 단어의 존재는 고대 고지 독일어 ango와 그 파생어인 독일어 Angel(낚싯바늘)을 통해 추정된다. 결국 저지 라틴어 angon(es)은 민간에서 널리 쓰이던 말로, 왈롱 지방의 angon(“갈고리 달린 막대기”)의 존재가 보여주듯 고대 프랑크어 *ango를 직접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프랑스 동부 방언과 프랑스어권 스위스 방언에서 “문짝 축(gond)”을 뜻하는 의미는 라틴어 gomphus(“발목, 못”)에 접두사 en-를 붙여 만든 동사 engoner(“문을 경첩에 달다”)에서 파생된 *engon이, 갈고리를 뜻하는 angon의 영향을 받아 angon으로 굳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고대 프랑스어 (soi) angler(“낚싯바늘로 낚다”)는 서게르만어 angul(고대 영어·고대 고지 독일어 angul → 영어 angle “낚싯바늘”, 독일어 Angel과 같은 의미)에서 노르만어를 통해 유래했으며, 같은 의미의 고대 스칸디나비아어 angul-, 고대 노르드어 ongull에 의해 강화되었을 것으로 본다. 또한 동일한 게르만 어원 *ag-는 노르만어 명사 angue(aingue 변형) “갈고리”에서도 발견되는데, 이는 색슨어 anga 또는 앵글로색슨어 anga “갈고리”, 즉 고대 저지 프랑크어 ango(고대 고지 독일어 ango)와 같은 단어에서 온 것이다.

앙곤 고고학

19세기까지 앙곤에 대한 인식은 오로지 고대 저술가들의 기록에만 근거했다. 고고학이 실물을 발굴해 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 무기의 도해 재현은 문제가 많았고 때로는 상상에 의존한 그림이 그려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18세기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프랑크족 묘지에서 여러 차례 발견이 이루어졌으나, 발견자들의 지식 부족과 학계 권위의 한계, 그리고 출토품의 열악한 보존 상태로 인해 해석이 어려워 앙곤으로 직접 확인되지는 못했다.

결국 이 무기는 독일과 프랑스에서 거의 동시에 진본으로 인정받았다. 라인란트에서 다섯 점이 출토되어 비스바덴, 마인츠, 다름슈타트의 박물관에 소장되었고, 1854년부터 1856년 사이에는 노르망디의 프랑크족 공동묘지인 앙베르뫼(Envermeu)에서 두 점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앙베르뫼에서 출토된 두 자루의 앙곤은 길이가 약 1미터이며 전체가 철로 만들어져 있다. 다만 자루 아래쪽에 관통 구멍(소켓)이 있어, 원래 끝부분에 나무 손잡이가 달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손잡이는 자루와 비슷한 길이, 즉 1미터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직후인 1859년에는 잉글랜드 켄트에서 새로운 앙곤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발굴 성과의 서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