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한니발의 첫 번째 스페인 원정(기원전 221~219년)

한니발의 첫 번째 스페인 원정(기원전 221~219년)

장군으로 임명된 바로 그날부터, 한니발에게는 이탈리아가 하나의 담당 전역처럼 할당된 듯했고, 그는 로마와의 전쟁을 수행할 운명을 지닌 인물로 여겨졌습니다. 그는 아버지 아밀카르 바르카나 전임 사령관 하스드루발처럼 운명의 급변 앞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단 한숨같은 시간도 허비해서는 안 된다고 확신했습니다. 이에 그는 사군툼(사간토) 공격을 결심합니다.

그러나 이 도시를 포위하면 필연적으로 로마의 무력 개입을 불러올 것임을 잘 알던 한니발은, 먼저 에브로 강(라틴어로 이베루스) 너머에 살던 올카데스족을 공격하기로 합니다. 올카데스족은 카르타고의 직접적인 종속국이라기보다 그 세력권에 속한 민족이었습니다. 한니발의 의도는 사군툼을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정복 사업과 주변 민족들의 복속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전쟁을 벌이게 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올카데스 정복과 겨울 주둔

올카데스족의 수도이자 부유한 도시인 카르탈라는 함락되어 약탈당했습니다. 공포에 질린 소규모 거점들은 승자에게 차례로 항복했고, 한니발은 그들에게 공납을 부과했습니다. 풍성한 전리품을 가득 실은 승리의 군대는 카르타헤나로 옮겨 겨울을 나았습니다.

그곳에서 한니발은 적의 전리품을 후하게 나누어 주고, 밀린 군급을 기한을 놓치지 않고 정확히 지급함으로써 병사들과 동맹군의 충성을 점점 더 자신에게 묶어 두었습니다. 봄이 돌아오자 그는 곧바로 무기를 바카이오스족에게 향했습니다.

바카이오스 원정과 카르페타니족의 반격

헤르만디카와 아르보칼라가 차례로 강습당했습니다. 특히 아르보칼라는 주민들의 용맹성과 많은 인구에 힘입어 오랜 기간 저항했습니다. 한편 헤르만디카의 피난민들은 전년도에 정복당했던 올카데스족 출신 피난민들과 합류해 카르페타니족을 들고일으켰습니다. 그들은 타구스 강(오늘날의 타호 강) 근처, 바카이오스 지방에서 철수하던 한니발을 공격해, 이미 전리품 때문에 비대해진 행군을 한층 더 늦췄습니다.

타구스 강에서의 기습

한니발은 즉각 교전에 나서지 않고 강변에 진영을 치고 기다렸습니다. 적진이 첫잠에 빠졌음을 알리는 고요가 감돌자 그는 강을 도강했습니다. 이어 대열의 배치를 통해 적이 자신의 발자취를 따라 건너올 여지를 남겨 둔 뒤, 적이 강을 건너는 중에 기습하기로 작정합니다.

기병대는 적이 물에 들어서는 즉시 공격을 시작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강가에 배치된 보병대 앞에는 마흔 마리의 코끼리가 배치되었습니다.

올카데스족과 바카이오스족의 잔병까지 합친 카르페타니족은 10만에 달하는 대군으로, 평지에서라면 무적이나 다름없는 전력이었습니다. 본래 오만하고 수적 우위를 믿었으며, 한니발의 후퇴가 두려움 탓이라 확신하고, 승리의 유일한 장애물은 강 건너기뿐이라 여긴 그들은 전투 함성을 지르며 지휘도 대열도 없이 각자 가장 가까운 지점에서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강 반대편 기슭에서는 대규모 기병대가 그들을 향해 출동했고, 급류 한가운데서 불균형한 격돌이 벌어졌습니다. 발을 딛고 설 곳이 없어 물에 휩쓸릴까 두려워하던 보병은, 말을 되는 대로 몰아붙이는 무장조차 갖추지 못한 기병에게도 쉽게 쓰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움직임과 갑옷이 자유롭고 말이 깊은 물에서도 딛고 설 수 있는 기병들은 가까이서나 멀리서나 마음껏 싸울 수 있었습니다.

많은 병사가 강물에 삼켜졌고, 어떤 이들은 빠른 물살에 카르타고군 쪽으로 밀려나 코끼리 발굽에 짓밟혔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자들은 자기 쪽 기슭으로 돌아가는 편이 안전하다고 판단했지만, 이곳저곳에 흩어졌던 그들이 서로 뭉치고 이 끔찍한 혼란에서 벗어나려던 바로 그 순간, 방진 대열의 선두에 선 한니발이 강을 건너 나타났습니다. 그는 이내 적을 기슭에서 완전히 몰아냈습니다.

정복의 완성

그 지방은 유린당했고, 며칠 뒤 카르페타니족은 복속되었습니다. 이로써 에브로 강 너머의 모든 땅은 사군툼을 제외하고 카르타고의 예속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한니발은 이 원정을 통해 스페인 내륙의 지배권을 굳건히 다지며, 훗날 로마와의 대결을 준비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