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의 결과
기원전 217년,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타고군이 집정관 플라미니우스의 로마군을 섬멸한 것이 바로 유명한 트라시메노 호수 전투였으며, 로마 민족이 겪은 몇 안 되는 기억에 남는 대참패 중 하나였다. 이 전투에서 로마군 1만 5천 명이 전사했고, 1만 명은 에트루리아 전역으로 흩어져 도주한 끝에 여러 갈래의 길을 통해 로마로 귀환했다. 적군의 사망자는 전투 중 2천 5백 명이었으며, 이후 부상으로 목숨을 잃은 자도 적지 않았다. 양측 모두 막대한 피해가 있었다고 보고하는 이들도 있지만, 필자는 아무런 근거 없이 사실을 과장하지 않으려는 마음—역사가들이 대체로 지나치게 빠지기 쉬운 결함—에서 비롯하여, 이 전쟁과 동시대를 살았던 파비우스의 기록을 가장 신뢰할 만한 것으로 여겼다.
한니발은 라틴인 출신 포로들을 몸값 없이 풀어주고, 로마인 포로들은 사슬로 묶었다. 그리고 쌓아 올려진 적군 시신 더미 속에서 자국 군인들의 시신을 골라내 매장하라고 명령했다. 또한 그는 플라미니우스의 시신을 찾아내 예우에 맞는 장례를 지내 주고자 최대한 세심하게 수색했으나,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로마에서는 이 참패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엄청난 공포와 소란 속에 백성들이 포룸으로 몰려들었다. 부인들은 거리를 배회하며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이 갑작스러운 패배가 무슨 일이며, 군대의 운명이 어떠한지를 물었다. 코미티움과 쿠리아 앞에는 대규모 공개 집회에 버금가는 인파가 모여 관리들을 몰아세웠고, 마침내 해 질 녘에 법무관 마르쿠스 폼포니우스가 이렇게 선언했다. "큰 전투에서 우리가 패배했습니다." 그는 이보다 더 구체적인 말을 하지 않았고, 백성들은 서로에게 퍼지는 소문을 주고받으며, 집정관과 군대 상당수가 전사했고, 생존자들은 에트루리아 곳곳으로 흩어져 도주했거나 적의 포로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집으로 돌고돌아 전했다. 패배한 군대에 닥칠 수 있는 모든 불행은 집정관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 휘하에서 복무하던 가족을 둔 사람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는 걱정거리가 되었다. 그들은 각자의 처지를 알지 못한 채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두려워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다음 날과 그 후 며칠 동안, 로마 성문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은 듯한 인파가 모여 가족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혹은 그들에 대한 소식이라도 들려오기를 기다렸다. 사람들은 새로 도착한 이들을 에워싸고 물었으며, 특히 잘 알려진 인물이라면 모든 경위를 순서대로 다 듣기 전에는 떠나 보내지 못했다. 소식을 전하는 자들 곁을 떠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각자 받은 소식이 좋은지 나쁜지에 따라 제각각이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주변 사람들의 축하 혹은 위로가 뒤따랐다. 특히 여인들은 기쁨이든 슬픔이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어떤 여인은 문 앞에서 살아남은 아들과 마주친 순간, 그의 품에서 숨을 거졌다고 한다. 또 한 여인은 아들이 죽었다는 잘못된 소식을 듣고 집에서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는데,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기쁨의 여린을 이기지 못해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한편 원로원에 관해서는, 법무관들이 며칠간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원로원 의원들을 쿠리아에 머물게 하여, 연전연승을 거듭하는 카르타고군에 맞설 장군과 병력에 관해 심의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