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로마 독재관(디크타토르)의 임명 –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등장 (기원전 217년 7월 초)

로마 독재관(디크타토르)의 임명 –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등장 (기원전 217년 7월 초)

예상치 못한 추가 패전

로마가 아직 뚜렷한 대응 계획을 세우기도 전에, 갑자기 또 한 번의 참패 소식이 전해졌다. 트라시메노 호수 전투 소식을 듣고 그 방향으로 진군하던 중이던 집정관 세르빌리우스가 동료에게 파견한 4천 명의 기병대와 프로프라이토르(전직 총독) 가이우스 켄텐니우스가, 움브리아 지방에서 한니발 군대에게 포위당한 것이다.

이 소식은 백성들의 마음에 저마다 다른 반응을 일으켰다. 어떤 이들은 더 큰 비애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앞서 입은 손실에 비하면 기병대의 패배 정도는 가벼운 일로 여겼다.

반면 다른 이들은 사건의 규모 자체를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병들고 쇠약해진 몸은 건강한 사람이 강한 충격을 견디는 것보다 오히려 작은 자극에도 더 크게 흔들리는 법이듯이, 국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렇게 결론 내렸다. 나라가 병들고 지쳐 버린 지금, 닥쳐오는 불행을 그 크기로 판단해서는 안 되며, 나라를 더욱 무너뜨릴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감당할 여력이 없다는 사실, 곧 국가의 고갈된 상태야말로 진짜 문제라고 말이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구제책, 독재관

결국 로마는 오랫동안 요구되지도, 실제로 사용되지도 않았던 처방전, 바로 독재관(디크타토르) 임명이라는 특별 조치에 다시 의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절차는 순탄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독재관을 임명할 권한이 있다고 여겨지던 집정관이 부재중이었고, 카르타고(포에니) 군대가 장악한 이탈리아를 가로질러 사절이나 서신을 전달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독재관은 민중회의에서 선출될 수 없다는 것이 그때까지의 관례였다. 결국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백성이 직접 독재관을 임명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가 독재관으로, 마르쿠스 미누키우스 루푸스가 기병장관(마기스테르 에퀴툼)으로 임명되었다.

수도 로마 방어 준비

원로원은 두 사람에게 로마의 성벽과 탑을 보강하고,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곳마다 주둔지를 배치하며, 다리를 모두 끊어버리라고 지시했다. 이탈리아를 지키지 못한 이상, 이제 남은 것은 도시와 가신 페나테스(Penates)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