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카이아(고대 그리스어: Φώκαια, 포카이아 / 오늘날 터키의 포차 Foça)는 소아시아에 위치한 고대 그리스 도시로, 에게해 연안의 스미르나 만(현재 튀르키예 이즈미르)에 자리잡고 있었다. 기원전 10세기에서 8세기 사이, 그리스 본토에서 건너온 그리스인들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시의 기원
고대 문헌에는 포카이아의 기원, 정치 제도, 종교 의식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아테네 출신의 필로게네스(Philogenes)가 도시를 세웠으며, 초기 주민은 아테네인과 포키스인(고대 그리스의 성역이었던 포키스 지방의 주민)으로 구성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포카이아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기후를 누리는 지역'에 위치했으며, 넓고 안전하게 보호된 만의 가장자리에 언덕을 등지고 자리잡은 도시였다고 한다.
이오니아 십이 도시 동맹
포카이아는 소아시아의 12개 그리스 도시로 구성된 이오니아 동맹, 즉 '십이 폴리스(Dodecapolis)'의 일원이었다. 동맹에는 키오스, 클라조메나이, 콜로폰, 에페소스, 에리트라이, 레베도스, 밀레투스, 미운테, 프리에네, 사모스, 테오스 등이 속해 있었다.
그러나 이들 도시는 동맹을 결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호 간의 유대가 매우 느슨했다. 이러한 분열적인 구조 때문에 기원전 7세기 이후 리디아, 킴메르, 그리고 기원전 546년부터는 키루스 2세가 이끄는 페르시아와 같은 강대국에 직면했을 때 취약한 입지에 놓이게 되었다.
리디아의 보호국 시대
소아시아의 그리스 도시들은 주변의 부유하고 번영한 국가인 리디아 왕국과 활발한 상거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기원전 7세기 초, 북방에서 침입한 킴메르인들이 리디아와 그리스 도시들의 영토를 유린하던 시기, 리디아 왕 귀게스(Gyges)는 동맹과 정복을 병행하는 정책을 추진했고, 리디아인과 그리스인은 공동의 적에 맞서 힘을 합쳤다.
귀게스는 전투 중 전사했지만, 평화가 회복된 후 그의 후계자들이 왕국을 재건하며 그리스 도시들을 보호국으로 편입했다. 그리스 도시들은 여전히 자치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으나, 공물을 바치고 필요시 군사 지원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되었다. 반면 리디아인들은 이 과정에서 그리스 문화의 깊은 영향을 받았다.
서부 지중해의 식민 도시 건설
이오니아 도시들은 이미 번영을 누리고 있었지만, 지중해 각지에 건설한 식민지와의 교역 확장을 통해 더욱 부강해졌다. 기원전 6세기 무렵, 포카이아는 서부 지중해 그리스 식민지화의 '메트로폴리스(모도시)'로 자리매김했다.
포카이아인들은 기원전 600년경 론 강 하구 인근에 마살리아(오늘날 프랑스 마르세유, '포카이아인의 도시'라는 명칭의 유래)를 건설했으며, 이어서 아이깁나(오늘날 칸), 안티폴리스(오늘날 앙티브), 니카이아(오늘날 니스)를 차례로 세웠다. 또한 기원전 545년경에는 에트루리아를 마주한 코르시카 섬 서해안의 거점 알랄리아(오늘날 알레리아)를 건설하고, 스페인에는 엠포리온(오늘날 암푸리아스)과 같은 강력한 식민 도시들을 세워 지중해 무역망을 확장했다.
도시의 함락과 파괴
기원전 546년, 포카이아는 페르시아군에게 함락되고 파괴되었다. 그러나 본토의 부유한 가문들은 미리 식민지로 피신할 시간을 확보했고, 이들이 가져간 부와 인재는 새 거점들의 급속한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