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 패권의 종언: 레우크트라 전투 이후
스파르타의 헤게모니는 기원전 404년부터 371년까지 뚜렷하게 유지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371년 레우크트라 전투에서 테베에 패배하면서 스파르타는 패권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메세니아의 대부분을 잃었고, 펠로폰네소스 동맹마저 해체되었다. 여기에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정치 무대에 등장하면서 스파르타의 처지는 더욱 어려워졌다.
기원전 330년, 아기스 3세 왕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부관인 안티파트로스를 상대로 펠로폰네소스 연합군을 이끌고 공격했으나, 메갈로폴리스 전투에서 패배하고 전사했다. 라미아 전쟁 당시에는 국력이 너무나 약해져 참여조차 하지 못했다. 두 번째 재기는 기원전 281년 아레우스 1세 왕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스파르타는 아테네와 손잡고 에피루스의 피루스를 일시적으로 물리치는 데 성공했지만, 기원전 265년 아레우스 1세가 전사하면서 마케도니아가 다시 우위를 장악하게 되었다.
아카이아 동맹의 부상과 클레오메네스 전쟁
스파르타의 약화는 아카이아 동맹이 세력을 확장하는 발판이 되었고, 한편으로는 라케다이몬(스파르타)의 정치 체제 내부에도 깊은 위기가 찾아왔다. 먼저 아기스 4세의 개혁 혁명이 일어났고, 이어서 클레오메네스 3세의 혁명이 뒤따랐다. 클레오메네스 3세는 아카이아 동맹의 확장을 저지하려 했는데, 초기에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 기원전 226년에는 동맹이 그에게 지도권을 넘겨줄 정도였다. 그러나 병으로 인해 이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기원전 225년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클레오메네스는 또 한 번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시키온의 아라토스가 동맹의 스트라테고스(사령관)로 선출되면서 스파르타의 화해 구상은 좌절되었다. 아라토스는 마케도니아에 원조를 요청했고, 마케도니아군은 기원전 224년 코린토스 지협을 넘어 진입했다. 재정과 군사력 모두 열세에 놓인 클레오메네스는 결국 셀라시아 전투에서 마케도니아 왕 안티고노스 3세 도손에게 대패했다. 스파르타는 함락되었고, 클레오메네스는 이집트로 망명해야 했다.
나비스의 통치와 로마의 개입
셀라시아의 패배 이후 스파르타는 심각한 정치적 혼란에 빠졌다. 기원전 207년, 나비스가 왕위에 올랐다. 정확히는 스파르타의 참주(티란)가 된 것이다. 그의 통치 아래 아카이아 동맹과의 전쟁이 재개되었다. 기원전 205년 스파르타는 로마의 동맹국이 되었고, 이는 지역의 세력 균형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스파르타는 아카이아인들과 대립하게 되었고, 역설적으로 아카이아인들 역시 로마의 동맹이 되어 마케도니아와 대립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는 아르고스를 점령해 스파르타에 넘겼다. 나비스는 아르고스에서 부채를 탕감하고 부유층을 박해하는 방식으로 민심을 얻었다.
로마는 처음에는 이러한 움직임을 묵인했지만, 기원전 197년부터는 그리스 도시들과 손잡고 스파르타에 맞섰다. 모든 면에서 열세에 몰린 스파르타는 기원전 195년 강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스파르타는 광대한 영토 일부, 페리오이코이(주변 자유민) 징집권, 항구 기티온, 그리고 함대 대부분을 상실하고 말았다.
필로포이멘의 강압과 내부 혼란
기원전 192년 나비스가 암살당하자, 아카이아 동맹의 스트라테고스 필로포이멘이 스파르타에 동맹 가입을 강요했고, 사실상 스파르타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되었다. 그는 스파르타인들에게 성벽 철거를 명령하고, 헤일로타이(노예 신분의 농민)를 해방하여 떠나도록 강제했다. 남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상품 노예로 팔릴 위협을 받았고, 실제로 3,000명이 노예로 팔려나갔다. 나비스의 개혁은 모두 폐지되었고, 국가 교육 제도인 아고게(agôgè)도 금지되었다.
이후 스파르타는 옛 참주 지지파, 나비스에 의해 추방된 망명자들, 온건파 망명자들 등 여러 세력 간의 갈등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반면 로마 사절들은 아카이아인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이 상황은 기원전 180년에야 비로소 수습되었다. 모든 망명자들이 소환되었고, 스파르타는 성벽을 다시 쌓고 아고게를 부활시킬 수 있었다.
최후의 저항과 스파르타의 몰락
그러나 동맹과의 불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기원전 148년 아카이아인들이 스파르타를 공격해 격파했다. 로마가 개입하여 스파르타와 코린토스를 아카이아에서 분리시킬 것을 요구했다. 분노한 아카이아인들은 다시 무기를 들었지만, 기원전 146년 로마에게 완패했다. 스파르타는 이론상 승전 진영에 속했지만, 현실에서는 페리오이코이 도시들을 잃었고, 이 도시들은 자체적으로 '라케다이몬인의 코이논'(동맹)을 결성했다.
결국 스파르타는 자치권을 명목상 유지했지만 고립된 2류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때 그리스를 지배했던 강대국의 영광은 이제 오래된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