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고트족: 스칸디나비아 기원의 게르만 민족, 역사와 유산 총정리

고트족(Goths)은 게르만계 민족으로, 그들 자신의 전통에 따르면 스칸디나비아가 기원지로 전해진다. 출생지로는 고틀란드섬이 유력하게 거론되지만, 스웨덴 남부의 예탈란드(Götaland) 또는 오늘날 폴란드 북부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서기 초반 무렵 이들은 비스툴라 강 하구 일대(현재 폴란드 북부)에 정착했으며,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에는 '구토네스(Gutones)'라는 이름으로 그 존재가 처음 기록된다.

'고트(Goth)', '예타르(Götar)', '구타르(Gutar)' 등 여러 명칭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어근 'gaut'는 이들이 같은 뿌리를 가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어근은 고트어 'giutan'(붓다, 쏟아내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하와 분열

2세기 후반, 고트족의 일부는 남동쪽으로 이동하여 흑해 연안에 도달했다. 3세기에는 이미 현대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지역에 자리 잡았으며, 이 과정에서 다른 여러 집단이 부족에 흡수·통합된 것으로 보인다. 3세기 말까지 고트족은 하나의 민족을 이루었으나, 세기 초 로마 제국과의 첫 충돌 이후 두 갈래로 나뉜다. 동쪽의 그레우퉁기(Greuthungi)는 훗날 동고트족(Ostrogoths)이 되었고, 서쪽의 테르빙기(Tervingi)는 서고트족(Visigoths)으로 이어진다.

동고트족은 375년 훈족에게 정복당했고, 그 몰락 이후 로마 제국의 포에데라티(federati, 동맹민족)가 되었다. 그러나 488년 테오도리크의 지휘 아래 비잔틴 제국의 요청으로 이탈리아를 정복했으며, 테오도리크 사후에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군대에 밀려 동고트 왕국이 붕괴한다.

역사

마케도니아와 고대 그리스 침입

로마 제국 국경에 인접해 살던 고트족은 230년경부터 제국이 겪은 최초의 대규모 야만족 침입의 주역이 되었다. 267년에는 트라키아를 약탈했고, 269년에는 '고트인'이라 불린 클라우디우스 2세가 이끄는 로마군이 나이수스 전투에서 승리했으며, 271년에는 다뉴브 강 너머로 밀려났다. 훗날 서고트족이 되는 이들은 다뉴브 강 건너편에 정착해 버려진 로마 속주 다키아에 독립 왕국을 세웠다. 한편 우크라이나에 남은 고트족은 흑해 연안을 따라 광대하고 강력한 왕국을 건설하며 동고트족이 되었다.

6세기 초, 동고트 왕 테오도리크 대왕의 통치 아래 고트족은 거의 20년 가까이 단일 왕관 아래 잠시 통합되기도 했다. 테오도리크는 이 기간 서고트 왕국의 섭정 역할도 수행했다.

기독교 수용

고트족은 기독교를 받아들인 최초의 야만족(게르만) 민족이다. 주교 울필라(Wulfila, 311~383)는 성경을 고트어로 번역했고, 고트족을 아리우스파로 개종시켰다. 아리우스파는 로마 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초기 기독교 교설 중 하나로, 이를 받아들인 게르만 민족과 로마인 사이의 차이를 규정짓고 서열화하는 요인이 되었다.

기원 논쟁

고트족의 기원은 역사학과 언어학을 아우르는 중요한 난제다.

지중해 세계의 기록 가운데 고트족의 존재를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기원전 2세기 비스툴라 강 하구(폴란드)였다. 150~200년경에는 현재 우크라이나 지역, 즉 흑해 연안을 차지했다. 6세기의 로마화된 고트인 요르다네스(Jordanes)는 그들의 전통과 전설에 따르면 기원지가 스칸디나비아라고 기록했다. 그는 또한 가우티고트(Gautigoths, 스웨덴 베스테르예틀란드로 추정)와 오스트로고트(외스테르예틀란드로 추정)라는 두 스칸디나비아 부족을 언급했다.

이 전통은 고고학적으로도 뒷받침된다. 남부 스칸디나비아와 고트족 문화 사이의 긴밀한 관계가 확인되며, 고트족이 폴란드에 모습을 드러낸 시기에 스웨덴 남부에서 인구 급감이 관찰된다.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게르만어파의 동게르만 분파(고트어)는 서게르만 분파보다 스칸디나비아(북게르만) 분파에 더 가깝다.

재구성된 '고트'라는 단어의 어근 *Gut-는 발트해의 섬 고틀란드(Gotland)와 동일하며, 고트어와 고틀란드의 스웨덴 방언 구트니스크(Gutnisk) 사이에는 흥미로운 대응 관계가 있다.

연대기

  • 180년경: 고트족, 흑해 연안에 정착
  • 200년경: 흑해 연안에 고트족 왕국 형성
  • 220년: 소아시아와 발칸반도 침입
  • 238년: 공물을 지불했음에도 로마가 고트족과 카르피족의 모이시아 철수 설득에 실패
  • 247년: 고트족의 본격적인 침입 시작
  • 250년: 발칸에서 카르피족은 다키아를, 고트족은 모이시아를 침공 · 제1차 고트 전쟁 발발(~269)
  • 257년: 고트족, 흑해에서 해상 약탈 개시 · 동고트족과 서고트족으로 분열
  • 267년: 트라키아·마케도니아·그리스 약탈
  • 269년: 제1차 고트 전쟁 종결
  • 332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다뉴브 하류에서 고트족 격파, 이후 동맹 조약 체결로 고트족이 다뉴브 국경을 방어
  • 334년: 고트족, 다뉴브 지역에서 반달족의 침입으로부터 로마 제국을 방어
  • 350년: 제2차 고트 전쟁 발발(~360)
  • 360년: 제2차 고트 전쟁 종결
  • 369년: 고트 주교 울필라, 그리스·라틴 문자와 일부 게르만 룬 문자를 바탕으로 고트 문자 창제
  • 379년: 테오도시우스 1세, 고트족과의 전쟁 수행
  • 401년: 제3차 고트 전쟁 발발
  • 413년: 제3차 고트 전쟁 종결
  • 512년: 테오도리크 대왕, 로마인과 고트인을 위한 법전 「테오도리크 칙령(Edictum Theodorici)」 반포
  • 531년: 라틴 작가 카시오도루스, 고트족의 역사를 저술하여 고트족을 로마인과 대등한 위치로 만듦
  • 535년: 마지막 고트 전쟁 발발
  • 552년: 마지막 고트 전쟁 종결

언어

고트족은 게르만어를 사용했다. 울필라 덕분에 다른 게르만어보다 수 세기 앞서 문자를 갖추어 문어(書語)의 지위에 올랐기 때문에, 고전 고트어는 앵글로색슨어(고대 영어)나 고대 노르드어보다 더 오래된 형태를 보여준다. 고트어는 동게르만어군의 가장 잘 알려진 대표로, 같은 어군에는 반달어나 부르군트어 등이 속한다. 오늘날 고트어는 사멸했지만 로망스어 계통 언어의 어휘에 흔적을 남겼다. 17~18세기까지 크림반도에는 그 잔존 형태인 크림 고트어(Crimean Gothic)가 남아 있었다.

유산

서유럽

서유럽에서 고트족이 역사, 예술, 지명 등에 남긴 주요 유산은 상대적으로 오래 지속된 서고트 왕국에서 비롯된다.

동유럽

동유럽의 경우 고고학적 문화 발굴을 통해 그 흔적이 확인된다. 1837년 부쿠레슈티 근교에서 한 농부가 고트족의 보물을 발견했는데, 이는 서고트족이 훈족을 피해 도주하며 남긴 것으로, 독수리 문양의 유명한 브로치 장신구들이 포함되어 있다. 독수리는 고트족이 흑해 연안에 살던 시절부터 사용해 온 대표적인 상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