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의 긴 여정 속에서 모든 민족은 수많은 영웅적인 인물들을 배출해 왔다. 그러나 일부 국가들은 '불리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다른 선택지조차 없었다. 폴란드가 바로 그런 나라다(그리스 역시 마찬가지다). 폴란드인은 18세기 말부터 세 개 제국의 지배 아래 신세를 부려야 했다. 그중 가장 넓은 영토는 러시아 제국에 점령당했다.
차르 체제가 붕괴하자 폴란드는 자유를 되찾았다. 그러나 러시아의 후계국인 소련은 볼셰비키 정권이 확립되자마자 '인민 혁명'을 수출하기로 결심한다. 이에 따라 1920~21년 소련-폴란드 전쟁이 벌어졌고, 소련군은 바르샤바 성문 앞까지 진격해왔다.
폴란드 지도부는 필사적으로 맞섰고, 마침내 바르샤바 전투에서 소련군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이 전투는 '비스툴라 강의 기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승전의 의미는 1920년 8월 15일, 성모 영면 대축일(로마 가톨릭에서도 같은 날을 기념한다)에 더욱 굳건해졌다. 이 전투와 승리의 주역은 병사들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인 십자가를 들고 함께 싸운 한 사제가 있었다.
군종 사제
이그나치 스코루프카(Ignacy Skorupka)는 1893년 바르샤바에서 러시아 시민으로 태어났다. 용기 외에 특별히 빛나는 재능은 없던 장난꾸러기 아이였지만, 1916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다만 본당 신부로 임명되지는 못하고 고등학교 교사가 되어 신학, 라틴어, 그리스어를 가르쳤다. 형을 통해 폴란드 독립 사상을 접하면서 그는 클린체(Klinze) 지역 폴란드 공동체의 지도자로 성장해 갔다.
1918년 폴란드로 돌아온 그는 로흐우프(Łochów)의 구주 변모 성당에 부임하여 어린이들에게 폴란드 역사를 가르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19년에는 바르샤바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다 1920년 볼셰비키군이 남진해오자 그는 군종 사제로 입대해 제236 의용보병연대 제1대대에 배속되었다. 훗날 이 연대에는 폴란드 대학생들이 자원 입대하면서 '대학 군단 제36연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소프의 위기
8월 13일 저녁, 대대는 오소프(Ossów)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맞은편에는 미하일 투하쳅스키가 지휘하는 소련군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마을은 바르샤바로 통하는 주요 도로가 지나는 전략적 요충지를 장악한 곳이었기에, 양측 모두에게 그 확보는 생사를 건 문제였다. 폴란드군 주력이 소련군 측면을 치는 대규모 기동 작전을 수행하는 동안, 동원 가능한 모든 의용병이 이 마을에 투입되었다.
폴란드군은 제18보병사단 산하 4개의 전력이 부족한 연대를 이곳에 집결시켰다. 제33연대와 제36연대의 잔여 병력이 마을에 진지를 구축했고, 그 옆에는 고등학생들까지 편입된 신설 제221연대와 제236연대 역시 축소된 전력으로 배치되었다. 반대편에는 붉은 군대 제2소총병사단과 제79소총병여단이 보병 3개 연대(제16, 제235, 제366연대)와 기병대를 이끌고 있었다.
기적…
8월 14일, 소련군은 맹렬한 공세를 퍼부어 마을을 점령했고, 사실상 바르샤바로 가는 길이 열리고 말았다. 폴란드에게 모든 것이 끝난 듯 보였다. 그러나 바로 그날 밤, 제36연대가 선봉에 선 폴란드 제18사단이 역공을 감행했다. 제1대대의 병사들 곁에는 당연히 스코루프카 사제도 있었다. 폴란드군은 소련군 진지를 향해 돌격했지만 소련군의 탄막에 막혀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바로 그 순간, 스코루프카 사제가 전사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첫 번째는 전장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에게 영성체를 베풀던 중 사망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이자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제1대대가 탄막에 묶여 있을 때 스코루프카가 몸을 일으켜 십자가를 손에 들고 병사들을 앞장서서 격려하며 돌진하다가 머리에 총탄을 맞고 즉사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폴란드군의 역공은 성공했고, 오소프는 탈환되었으며 폴란드 방어선의 균열은 봉합되었다. 순교자의 죽음은 다음 날, 곧 성모 영면 대축일에 알려졌고 곧바로 승리와 연결되면서 '비스툴라 강의 기적'이라는 전설이 탄생했다. 폴란드 지도자 유제프 피우수츠키의 정적들은 이렇게 승리를 폴란드 원수의 작전 계획이 아닌 하느님의 은총 덕분으로 돌렸다.
하지만 사제가 배속되었던 중대의 지휘관 미에치스와프 스워비코프스키(Mieczysław Słowikowski) 중위는 회고록에서, 사제가 실제로 목에 십자가를 걸고 손에 십자가를 든 채 고착된 병사들을 격려하다가 전사했다고 증언했다.
영웅 사제는 사후 포상을 받았다. 오소프에는 기념비가 세워졌으나 독일군에 의해 파괴되었고, 폴란드가 동구권에 강제 편입된 뒤에는 소련이 재건축을 허용하지 않았다. 마침내 1989년에야 기념비는 다시 세워질 수 있었다.
글: 판텔리스 D. 카리카스(Pantelis D. Karyka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