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헤룰리족(Heruli): 흑해의 해적에서 이탈리아의 정복자까지

헤룰리족(Heruli)은 고트족(Goths), 반달족(Vandals), 부르군트족(Burgundians), 게피드족(Gepids) 등과 마찬가지로 스칸디나비아에 뿌리를 둔 소위 '동(東)게르만' 계열에 속하는 게르만 민족이다. 비교적 덜 알려진 소규모 부족이었지만, 고트족의 약탈 원정에 자주 동참했으며 특히 흑해에서는 해적 활동으로 이름을 날렸다.

고대

헤룰리족이 로마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3세기다. 268년과 269년, 그들은 페우키니족(Peucini)과 카르피족(Carpi) 같은 소규모 게르만 부족은 물론 게피드족, 그리고 무엇보다 고트족까지 규합한 야만인 연합군에 가담했다. 당대 로마·그리스 연대기 작가들의 과장이 섞인 기록에 따르면 이 연합군은 30만 명이 넘는 전사를 보유했다고 하며, 다뉴브 강에서 클라우디우스 2세 고트쿠스(Claudius II Gothicus) 황제의 군대를 공격했다.

같은 3세기에 판노니아에 자리 잡았던 롬바르드족(Lombards)은 568년에야 서방으로 대이동을 시작했는데, 이들은 헤룰리족의 동맹 혹은 속국으로 지내며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후 대이동 시대, 즉 4세기 후반부터 헤룰리족에 대한 기록이 다시 나타난다.

중세 초기

5세기에 헤룰리족은 다뉴브 강 유역에 일종의 왕국을 세웠다. 물론 그 규모는 인구가 많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이탈리아에 정착해 있던 헤룰리족 출신 오도아케르(Odoacer)가 이끈 무장 집단도 아마 이곳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오도아케르는 파비아를 불태우고 로마를 약탈한 뒤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Romulus Augustulus)를 폐위하고 스스로 '이탈리아의 왕'으로 선포되었다(476년). 이 사건은 역사학에서 서로마 제국의 공식적인 멸망으로 해석되는 대표적 전환점이다.

그러나 3~5세기 사이 모든 헤룰리족이 다뉴브 강 유역에 정착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400년에서 407년 사이 프리슨족(Frisians)과 색슨족(Saxons)과 어울려 북해와 영국 해협 연안에서 해적질을 벌이던 야만인 무장 집단 속에 헤룰리 분견대가 확인된다. 이들은 로마 제국의 해안 방어선(아르모리카 해안 군사 구역, Litus Saxonicum·Litus Armoricanus)을 잠식하고 대서양 연안까지 전초 기지와 소규모 정착지를 세워 나갔다. 이렇게 해서 스페인까지 진출했으며, 456년에는 배 8척에 탄 약 500명의 헤룰리 해적이 칸타브리아와 갈리시아 연안에서 목격되었다. 일부는 스페인 해안에 정착해 해적 활동을 계속하기도 했다.

476년 이후에는 다른 헤룰리족들이 테오도릭 대왕(Theodoric the Great)의 군대에 복무하며, 동로마 황제 제논(Zeno)이 이탈리아 수복을 위해 파견한 동고트족에 합류했다. 당시 이탈리아는 오도아케르의 야만인 용병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다.

491년경 테오도릭은 반달족을 격파한 뒤, 알레만니족(Alamans)의 압력에 대비하기 위해 다뉴브의 헤룰리족과 접촉했다.

오도아케르는 493년 테오도릭에게 패배해 축출되었고, 그의 무장 집단은 이탈리아에서 쫓겨났으며, 고트족의 왕은 라벤나를 중심으로 한 왕국을 건설했다. 한편 로둘프(Rodulf) 왕의 지휘 아래 다뉴브로 돌아간 헤룰리족은 510년 롬바르드족에게 크게 패배하였고, 많은 이들이 스칸디나비아로 되돌아갔다.

550년에는 시르미움(Sirmium)과 싱기두눔(Singidunum)을 따라 이어지는 다뉴브 방어선(다누비아 리메스)에 약 3,000명의 헤룰리 용병이 주둔한 것이 확인된다. 이들은 510년경부터 그곳에 정착해 있던 사람들이었다. 또한 헤룰리 부대는 533년과 534년 비잔티움이 아프리카의 반달족과 벌인 전쟁에 참전했으며, 551년부터는 노장(老將)이자 환관 출신의 장군 나르세스(Narses)의 지휘 아래 이탈리아에서 동고트족과 맞서 싸웠다.

헤룰리족은 7세기 중반 이전에 독립된 민족으로서 역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북방의 헤룰리족은 프리슨족과 색슨족에 융화되었고, 일부는 수백 년 전 떠났던 고향 스칸디나비아로 되돌아갔다. 이는 먼 고향에 대한 깊은 애착, 그리고 북유럽 민족과의 유대가 여전히 살아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나머지는 동고트족과 롬바르드족에 동화되어 그 명맥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