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배경
독일연방공화국(FRG, 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GDR, 동독)의 수립은 제2차 세계대전의 두 승전 강국인 미국과 소련(USSR)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냉전 시기에 이루어졌습니다.
전쟁이 끝난 직후, 독일은 포츠담 회담(1945년 7월 17일 ~ 8월 2일)에서 네 개의 점령 지역으로 분할되었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 연합국이 각각 한 구역씩 관리하게 되었고, 수도 베를린 역시 넷으로 나뉘었습니다.
한편 1947년, 미국의 조지 마셜 국무장관은 유럽 재건을 위한 대규모 경제·사회 지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른바 '마셜 플랜(Marshall Plan)', 즉 유럽부흥계획(European Recovery Program)입니다.

개요
존속 기간: 1949년 10월 7일 ~ 1990년 10월 3일
주요 인물
- 콘라드 아데나워(Konrad Adenauer)
- 발터 울브리히트(Walter Ulbricht)
- 루트비히 에르하르트(Ludwig Erhard)
-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dt)
- 에리히 호네커(Erich Honecker)
- 헬무트 콜(Helmut Kohl)
두 독일의 성립 과정
1946년 12월, 미국과 영국은 자국의 점령 지역을 통합하기로 결정했고, 1948년에는 프랑스도 여기에 합류했습니다. 이렇게 통합된 영토는 마셜 플랜의 틀 안에서 화폐 개혁을 단행해야 했으며, 그 결과 새로운 통화인 독일 마르크가 도입되었습니다. 서베를린에도 같은 화폐가 적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스탈린은 이른바 '삼국 점령 지역(Trizone)'의 통합을 조약 위반으로 간주했습니다. 소련은 이에 맞서 베를린 봉쇄를 감행하여 서베를린과 서독을 잇는 모든 육상 교통로를 차단했습니다. 약 11개월 동안 서베를린은 오직 공중 수송, 이른바 '베를린 공수 작전'으로 생필품을 조달해야만 했고, 1949년에야 봉쇄가 해제되었습니다.
1949년 5월 23일, 독일연방공화국(FRG)을 설립하는 헌법에 해당하는 '기본법'이 공포되었고, 본(Bonn)이 수도로 정해졌습니다. 이어 같은 해 10월 7일에는 독일민주공화국(GDR)이 선포되었으며, 수도는 동베를린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독일은 두 개의 국가로 갈라졌고, 이 분단은 40여 년 뒤 재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분단의 결과와 영향
- 서독은 눈부신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마셜 플랜의 지원과 새로운 통화의 도입에 힘입어 FRG는 고도 성장기, 이른바 '경제 기적(Wirtschaftswunder)'의 시대에 진입했습니다.
- 반면 동독은 심각한 경제난에 시달렸고, 이는 1953년 동베를린 봉기를 비롯한 저항 운동과 서독으로의 대규모 인구 유출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의 직접적인 결과물이 바로 1961년 세워진 베를린 장벽입니다.
- 1960년대부터 독일인들은 양 진영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분단 문제를 스스로 주도하고자 했습니다. 1969년 빌리 브란트가 FRG 총리로 집권하면서 동유럽과 동독을 향한 문호를 여는 '동방 정책(Ostpolitik)'이 추진되었습니다. 1972년 12월 21일, 두 독일은 서로를 국가로 상호 승인하는 기본조약에 서명했습니다.
-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와 함께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이는 1990년 10월 3일 독일 재통일로 이어졌습니다.
- 냉전 기간 독일과 베를린에서 전개된 일련의 사건들은 세계가 양극화로 치닫고 다시 완화되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살아 있는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