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Romulus Augustulus, 라틴어: Flavius Romulus Augustus, circa 460년~추정 511년경)는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입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옹립되었으나 실권은 전혀 없었고, 짧은 재위 끝에 퇴위하면서 고대 서로마 제국의 막을 내리게 되는 인물입니다.
쿠데타와 우연한 즉위
본명은 플라비우스 로물루스(Flavius Romulus)로, 아버지는 게르만 계통 혈통으로 추정되는 로마 정치가 플라비우스 오레스테스(Orestes)였습니다. 475년, 서로마 황제 율리우스 네포스(Julius Nepos)는 오레스테스를 '군사장관(Master of Soldiers)'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28일, 오레스테스는 쿠데타를 일으켜 402년부터 서로마 제국의 수도 역할을 해온 라벤나를 장악했습니다. 율리우스 네포스는 달마티아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고, 그는 480년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서 명목상 서로마 황제의 왕관을 유지했습니다. 네포스는 동로마 제국이 공인한 마지막 서로마 황제였기에, 법적으로는 그가 서방의 마지막 적법 황제였습니다.
오레스테스는 달마티아를 제외한 서로마 제국의 잔여 영토를 사실상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왕위 자격이 인정되지 않았거나, 스스로 황제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거나, 혹은 군대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며 아들을 통해 제국을 정치적으로 통치하려 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든 그는 475년 10월 31일 아들 로물루스를 황제로 옹립했습니다. 그러나 이 즉위는 경쟁자인 동로마 황제 제노 1세(Zeno I)에게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꼭두각시 황제와 오도아케르의 반란
플라비우스 로물루스는 즉위 당시 어린아이 혹은 매우 어린 소년이었으며, 아버지 오레스테스의 손에 들린 꼭두각시에 불과했습니다. 권력 장악 직후 오레스테스는 헐리족(Heruli), 스키레스족(Skires), 토르킬링기족(Torcilingi)에게 정착지로 쓸 땅을 주기를 거부했고, 이 결정은 헐리족 수령 오도아케르(Odoacer)가 이끄는 반란을 불러왔습니다. 오레스테스는 476년 8월 28일 파비아에서 체포된 뒤 곧바로 처형되었습니다.
오도아케르는 라벤나로 진격하여 도시와 함께 어린 황제까지 생포했습니다. 결국 로물루스는 476년 9월 4일 퇴위를 강요당했습니다. 오도아케르는 로마 원로원과 합의하여 황제의 상징인 제국 레갈리아와 함께 동로마 황제 제노 1세에게 복종을 표했고, 제노는 이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그에게 이탈리아 왕(King of Italy) 칭호를 하사했습니다.
이 사건은 법적으로는 오도아케르의 복속으로 서방이 동방에 귀속된 형태였지만, 오늘날 일반적으로 서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간주됩니다. 이후 동로마 제국, 곧 비잔티움 제국은 1453년까지 명맥을 이어갔습니다.
당대 이탈리아인들에게는 큰 변화가 아니었다
5세기 말 이탈리아 주민들에게 권력 교체는 큰 충격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410년 알라리크 1세에 의한 로마 약탈이 훨씬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로마의 실권은 이미 오래전부터 야만족 출신 장교들과 그들의 용병 부대로 넘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훨씬 더 파괴적인 사건은 훗날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감행한 이탈리아 재정복 전쟁이었습니다.
'작은 아우구스투스'라는 멸칭
그는 공식적으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로 통치했지만, 흔히 경멸적인 별칭인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라틴어 접미사 '-울루스(-ulus)'는 축소형으로, '아우구스툴루스(Augustulus)'는 '하찮은 아우구스투스', 즉 '꼬마 아우구스투스'를 의미합니다. 어린아이에게 '아우구스투스(존귀한 자)'라는 칭호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조롱이 담겨 있는 셈입니다.
온화하게 끝난 최후
선대 황제들의 많은 퇴위와 달리,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의 퇴위는 그에게 오히려 득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오도아케르는 어린 황제에게 연민을 느껴 그를 살려주었고, 가족과 함께 평화롭게 지내도록 캄파니아로 보냈다고 합니다. 연금이 지급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특정 로물루스와 그의 어머니에 관한 서한을 근거로, 이 연금은 507년, 심지어 511년까지도 대왕 테오도리크(Theodoric the Great)가 지급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유스티니아누스 군대의 로마 재정복을 목격하지는 못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논란이 되는 '마지막 황제'의 지위
그가 서방의 마지막 황제라는 정통성은 종종 의문을 받습니다. 동로마 황제 제노 1세는 그를 황제로 인정한 적이 없으며, 480년 율리우스 네포스가 사망할 때까지 그를 적법한 황제로 계속 승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우, 서로마의 마지막 로마 황제는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로 간주됩니다.
역사가 남긴 아이러니
역사는 기묘한 아이러니로, 로마 역사상 가장 중요한 두 인물의 이름을 이 소년에게 모아두었습니다. 아버지 오레스테스의 허영심은 아들에게 로마 건국자 로물루스의 이름을 붙였고, 즉위는 옥타비아누스가 초대 로마 황제가 된 후 받았던 '아우구스투스'라는 호칭을 안겨주었습니다.
또 다른 아이러니는 동서 양측 마지막 황제의 최후를 비교할 때 드러납니다.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는 무명 속으로 조용히 사라진 반면, 동로마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영웅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