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왕 루이
루이 14세에게 왕국의 위대함은 그 화려함과 아름다움으로도 측정되어야 할 것이었습니다. 콜베르(Colbert)의 조언에 따라 국왕의 초기 사업 중 하나는 궁전과 튈르리 정원의 복원이었으며, 이는 루이 르보(Louis Le Vau)와 앙드레 르노트르(André Le Nôtre)에게 맡겨졌습니다. 실내 장식은 샤를 르브룅(Charles Le Brun)과 당대 최고 명성을 자랑하던 왕립 회화·조각 아카데미의 화가들이 담당했습니다.
재위 기간 내내 점진적으로 확장해 온 베르사유 궁전 외에도, 루이 14세는 가까운 친우들을 초대하기 위해 마를리 성(Château de Marly)을 새로 지었습니다. 이 두 성은 물론, 그의 통치가 시작된 생제르맹 성에서도 정원 복원 작업은 르노트르에게 위탁되었습니다.
파리에서도 그는 수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사비로 건설을 지원한 로얄 다리(Pont Royal), 천문대, 샹젤리제 거리, 앵발리드, 방돔 광장, 그리고 스페인·신성로마제국·브란덴부르크·네덜란드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는 승전광장(Place des Victoires)이 대표적입니다. 또한 생드니 거리와 생자크 거리에 세워진 두 개의 개선문은 '태양왕'의 유럽 전쟁에서의 승리를 찬양했습니다.
그는 보방(Vauban)의 공사를 통해 릴, 베장송, 벨포르, 브리앙송 등 프랑스 주요 도시들을 요새화하며 도시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궁정을 위해 조성된 베르사유, 알자스 획득지 방어를 위해 건설된 뇌프브리자흐(Neuf-Brisach)처럼 새롭게 탄생하거나 발전한 도시들도 있었습니다. 왕립 해군의 발전을 위해 브레스트와 툴론의 항구와 조선소를 확충하고, 로슈포르에 군항을, 로리앙과 세트에 무역항을 조성했으며, 마르세유에는 자유항과 갤리선 조선소를 건설하게 했습니다.
주요 연혁
* 1680년: 코메디 프랑세즈(Comédie Française) 창설
* 1681년: 툴루즈를 경유하여 대서양과 지중해를 잇는 미디 운하(Canal du Midi) 개통
* 1682년 11월: 파리의 왕립학교 '루이 르 그랑'을 국왕의 직접 후원 아래에 둠
* 1702년: 파리를 20개 구역으로 분할하고, 수도 거리에 가로등과 경찰 제도 도입
예술의 후원자, 루이 14세
푸케(Fouquet)의 체포 이후, 국왕은 그의 사치스러운 삶을 본받고자 한 듯 보였습니다. 그는 왕실 재정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는 극도로 후한 지출을 감행했습니다. 동시에 당대 최고의 문화 인사들을 후원하는 예술 후원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는데, 대표적으로 희곡작가 몰리에르(우정의 표시로 국왕은 그의 첫 아이의 대부가 되기도 했습니다), 음악가 장바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 장식가 샤를 르브룅, 정원사 르노트르 등이 그의 후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프랑스 아카데미를 자신의 통제 아래 두고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최종적으로 베르사유 궁전을 왕실 거처로 선택하기 전까지는 루브르 궁전 개선에도 큰 비용을 지출했습니다. 20년이 넘는 공사 끝에 그는 1682년 베르사유로 거처를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