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위기병 척탄병의 탄생과 위상
나폴레옹 군대에서 기마 척탄병(Grenadiers à Cheval)은 보병 척탄병과 함께 '마렝고 전투(1800년) 참전 용사'라는 명예로운 전통을 지닌 부대였습니다. 이들은 그 자부심만큼이나 까다로운 선발 기준을 유지했는데, 보병 척탄병과 마찬가지로 오랜 복무 경력과 훌륭한 신체 조건을 갖춘 베테랑 병사만 입대할 수 있었습니다.
1804년 7월 29일 집정관 근위대(Consular Guard)가 제국 근위대(Imperial Guard)로 개편되면서, 기마 척탄병 연대는 참모부와 2개 중대씩으로 구성된 4개 기병대대(squadron)로 재편되었으며, 총 병력은 1,018명의 기병에 달했습니다.
벨리트(Vélites) 중대의 추가
1806년 4월 15일 황제 칙령에 따라 연대에는 새로운 벨리트 대대가 추가되었습니다. 벨리트는 나폴레옹 시대 근위대에서 예비 장교 후보생 역할을 맡았던 젊은 병사들을 가리키며, 입대 자격조차 매우 높았습니다. 신장이 최소 1.76미터 이상이어야 했고, 연간 300프랑의 확실한 수입을 보유해야 하는 재산 요건도 있었습니다.
평시에는 별도로 훈련받던 벨리트들은 행군이나 전쟁 시에만 척탄병들과 합류했습니다. 실전 상황에서는 부대가 두 개의 연대로 분리되었고, 각 연대는 소령(major)의 지휘를 받으며 연대장(colonel)의 총지휘 아래 움직였습니다.
검은 말 위의 정예 기병, 엘라우에서 워털루까지
기마 척탄병들은 전통적으로 검은 말을 탔으며, 나폴레옹 전쟁의 거의 모든 주요 전투에서 활약하다 마침내 1815년 워털루 전투까지 그 명성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1807년 2월 빙설이 덮인 동프러시아 평원에서 벌어진 엘라우(Eylau) 전투에서는 나폴레옹의 곁을 지키며 결정적인 돌격을 감행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 엘라우 전투에서의 기마 척탄병
제복의 세부 사항
기마 척탄병의 제복은 기본적으로 보병 척탄병과 동일했습니다. 다만 몇 가지 구별되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 어깨 장식: 아우뢰르(aurore, 여명색·연분홍빛) 색상의 견장 끈을 찼으며, 왼쪽 어깨에는 반견장(counter epaulette), 오른쪽 어깨에는 아우뢰르 색의 술 달린 끈 장식인 에게유에트(aiguillette)를 부착했습니다.
- 1807년 이후 변화: 양쪽 어깨에 모두 반견장을 달고 에게유에트를 더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습니다.
- 모자: 곰털로 만든 베어스킨 모자(bonnet d'ours, '곰 모자')를 썼으나, 보병 척탄병과 달리 앞면의 금속 장판(plaque)은 없었습니다.
- 부츠: 행군용으로는 부드러운 갑피의 승마 부츠를, 1802년부터는 정장 차림 시 견고한 갑피의 부츠를 신었습니다.
야전 복장으로는 무릎바람 가죽 바지를 대신하여 허벅지 안쪽에 가죽을 덧대 보강한 회색 천 바지를 착용했습니다. 한편 장교의 경우, 제복과 마구구멍(harness)의 모든 아우뢰르 색상 장식이 금색으로 대체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 근위대 기마 척탄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