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치족은 미국 남서부에 거주하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의 집단으로, 같은 언어를 공유한다. 나바호족은 아파치족과 매우 유사한 언어를 사용한다.
유목 생활과 전사 문화
유목민이자 사냥꾼이었던 아파치족은 농경민들을 공격하는 용맹한 전사들이었으며, 이후 스페인 식민지 개척자들, 멕시코인들, 그리고 미국인들에 맞서 저항했다. 그들은 19세기 말 미국에 의해 최종적으로 패배하고 궤멸되었으며, 소수의 후손들이 오늘날 보호구역에서 살아가고 있다.
춤을 출 때 아파치족은 산의 정령을 상징하는 의상을 착용했다. 그들은 액운을 쫓아 병자를 치료했으며, 신체에 페인트를 칠하고 치마와 어두운 색의 가면을 착용해 몸을 꾸몄다. 아파치족은 많은 초자연적 존재들을 인정했지만, '우센(Ussen)'이라 불리는 최고의 신을 믿었다.
가장 유명한 지도자로는 코치세(Cochise)와 제로니모(Geronimo)가 있다.
아파치족과 스페인인들
정복자 프란시스코 바스케스 데 코로나도(Francisco Vásquez de Coronado)의 16세기 원정 기록에는 아파치족에 대한 다음과 같은 묘사가 남아 있다. "이 인디언들은 옥수수를 경작하지 않기 때문에 들소로부터 생계를 유지한다. 들소의 가죽으로 집을 짓고, 옷과 신발을 만들며 밧줄을 짠다. 털은 양모처럼 사용하고, 힘줄로는 실을 만들어 옷과 천막을 꿰맨다 [...]"
18세기 전반기, 스페인 정착민들이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려 했으나 토호노 오오담족과 아파치족의 저지에 막혔다. 1784년 멕시코는 아파치족을 말살할 것을 명령했다. 7세 이상의 아파치족은 누구든 학살 대상이었다. 후안 데 바우티스타 총독은 코만치족과 유트족을 규합해 그들의 전력을 아파치족에게 돌리려 했다. 그는 코만치 전사 각자에게 아파치족을 죽일 때마다 기록할 수 있는 카드를 배포했다.
보호구역으로의 강제 이주
1872년, 침략자에 맞서 저항한 끝에 톰 제퍼즈(Tom Jeffords, 1870년 성스러운 의식에서 코치세 추장의 '혈맹 형제'가 된 유명한 개척자), 코치세 추장, 올리버 O. 하워드(Oliver O. Howard) 장군 사이에 평화 조약이 체결되었다.
조약에 따라 2,500명의 아파치족이 아파치족 땅 중심부에 있는 치리카와 보호구역(8,000km²)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1876년에는 1,500명의 아파치족(나머지 1,000명은 '실종'됨)이 다시 산 카를로스 보호구역으로 이주당했다.
이 이주민들 중에는 코치세 추장의 장손이자 니뇨 코치세(Niño Cochise)의 아버지인 세습 족장 타자(Tahza)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38명 일가가 도중에 사라지도록 조치했다. 이 그룹에는 그의 아내 놋아스티(Nod-Ah-Sti, 토마스 제퍼즈가 '니오메'라 애칭함), 아들 니뇨 코치세, 샤먼 디오딧(Dee-O-Deet)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다시는 보호구역 명부에 오르지 않았고, 문신도 새기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를 '이름 없는 자들'이라 불렀다.
타자는 그랜트 대통령과의 면담을 위해 워싱턴으로 가던 중 폐렴으로 사망했다. 이 소식이 산 카를로스 보호구역에 전해지자, 코치세의 막내아들 나이체(Naiche)가 도망쳐 전장에 나섬으로써 1886년 9월까지 이어진 '제로니모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이제 니뇨 코치세가 지도자가 된 '이름 없는 자들'은 소노라의 산악 지대 파-고친-케이(Pa-Gotzin-Kay)라는 곳에서 40년 넘게 숨어 살며 자유를 지켰다.
아파치족의 신화와 유산
그들의 용맹함과 호전성에 대한 명성은 수많은 영화에 영감을 주었고, 20세기 초 파리의 젊은 불량배들을 '아파치'라 부르게 했으며, 공격 헬기 모델의 이름으로도 사용되었다. (아파치 문서 참조) 아파치족은 본질적으로 족장의 지휘 아래 놓인 유목 전사들이었다. 대부분 여성들이 버드나무 기둥을 유카 나무 섬유로 묶어 짓고, 여름에는 나뭇가지나 볏짚으로, 겨울에는 가죽으로 덮은 오두막에서 생활했다. 아파치족은 가죽 의상, 높은 목의 모카신, 장신구, 때로는 독수리 깃털을 착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