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비스마르크의 심판: 메츠를 넘긴 바쟁 원수의 군법회의

1870년 10월 28일, 프로이센군에 포위된 메츠에서 프랑수아-아킬 바쟁(François-Achille Bazaine) 원수는 라인군 전체를 이끌고 항복했다. 이 결정은 제2제국의 몰락과 함께 '조국 배반'이라는 거센 의혹을 낳았고, 전쟁이 끝난 뒤 원수는 군법회의에 회부되었다. 군부 관계자들에 이어 발언대에 오른 정치인들 역시 결코 온건하지 않았다. 레옹 갑베타(Gambetta)와 마찬가지로, 무엇보다 쥘 파브르(Jules Favre)는 페리에르(Ferrières) 성에서 비스마르크와 나눈 대화를 상기시키며 다음과 같은 강력한 논거를 고발에 제시했다.

비스마르크의 심판: 메츠를 넘긴 바쟁 원수의 군법회의

“비스마르크 남작은 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바쟁 원수가 확실히 복종할 거라고 장담하는가?’ 저는 적 앞에 선 사령관이라면 방어에 헌신하기 마련이며, 프랑스 장교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비스마르크 남작은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당신은 착각하고 있소. 나에게는 바쟁이 당신들 편이 아니라는 근거가 있소!’”

포르세 장군의 공소장

이어 정부 위원인 포르세(Pourcet) 장군에게 발언권이 주어졌다. 그의 공소장에는 이미 재판 과정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내용은 없었지만, 결론 부분은 절제된 어조 덕분에 오히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나는 여러분 앞에서 원수가 저지른 긴 죄행의 목록을 펼쳐 보였습니다. 이 범죄적 기도들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원수는 적의 함정에 빠져들었습니다. 적은 병사들이 아직 싸울 힘이 남아 있는 동안에는 희망의 불씨를 살려 두었지만, 굶주림과 결핍에 시달린 프랑스군이 저항력을 잃고 승자의 손바닥 위에 놓인 바로 그날 가면을 벗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총사령관의 이기적인 계산과 유죄의 음모로 인해, 조국의 운명까지 자신의 참화 속에 끌어안은 메츠의 수많고 용감한 군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유죄를 요구하는 세 가지 죄목

그의 결론은 명쾌했다. “프랑수아-아킬 바쟁 원수, 전 라인군 총사령관을 다음의 죄로 유죄로 선고할 것을 요구합니다. 첫째, 1870년 10월 28일 적과 항복 협정을 맺고, 자신이 최고 사령관으로 지휘하던 메츠를, 활용할 수 있던 모든 방어 수단을 다 소진하지도 않았고 의무와 명예가 요구하는 바를 다하지도 않은 채 적에게 넘겨준 죄. 둘째, 같은 날 야전의 군대를 이끌고, 그 군대가 무기를 내려놓는 결과를 낳은 항복 문서에 서명한 죄. 셋째, 이 항복 문서에 서명하기 전에 의무와 명예가 요구하는 모든 행동을 다하지 않은 죄. 이는 군사형법 제209조 및 제210조가 규정하고 처벌하는 범죄입니다.”

변호인 라쇼의 노력

방어의 임무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은 분명했다. 변호인 라쇼(Me Lachaud)는 그럼에도 뛰어난 변론 능력을 총동원하여, 아무도 믿지 않는 무죄 입증에 매달리기보다는 적어도 의뢰인의 죄에 대해 이성에 반하지 않는 선에서 감경 사유를 찾아내려 했다.

“치명적이지만 불가피했던 이 항복 이후 처음 며칠 동안, 바쟁 원수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검증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프랑스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 여러분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조사위원회 구성을 요청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스스로를 해명하고자 했던 원수는 정부에 해명서를 보내기까지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