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나폴레옹 III와 노동자들: 제2제정 프랑스의 어려운 사회적 상황

부르주아지의 독점과 노동자의 고립

나폴레옹 III의 산업 정책은 황제 개인의 동정심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었지만, 그만큼이나 뚜렷한 이해 관계의 산물이기도 했다. 통치에 야망을 품었거나 권력에서 배제되기를 원했던 부르주아지에 대한 견제가 그 핵심이었다. 황제에게 이 길은 결코 어렵지 않았는데, 당시 노동 계급이 품은 불만과 편견을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노동자들은 여전히 1791년 샤플리에 법(Le Chapelier Law)의 구속 아래 있었다. 이 법은 일체의 직업적 결사를 금지함으로써 노동자들을 고용주의 자비에 맡겨 버린 것이었다. 여기에 보통선거권의 제한은 부르주아지에게 정치적 독점권을 안겨 주었고, 부르주아지는 이 덕분에 사실상 법의 구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더욱이 노동 계급이 오랜 고립에서 벗어나 헌장 수호나 보통남성선거권 옹호를 위해 정치 세력과 손잡을 때마다, 승리한 부르주아지가 돌려준 것은 기껏해야 무관심뿐이었다. 제정 시대 여론의 침묵과 호황기의 안정된 경제 상황은 노동자 진영을 기존 정당들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런던 박람회와 황제의 계산

1862년 런던 만국 박람회를 방문한 선출직 노동자 대표단은 황제에게 노동자들과의 관계를 회복할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황제의 눈에 이러한 관계는 매우 유익한 것이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사회적·산업적 요구를 부르주아지의 야망과 결부하는 것을 거부하고, 정당들 사이에서 중립적 입장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황제는 필요할 때 정당들 사이에 균열을 내며 그들을 견제할 수 있었다. 아울러 노동자들의 사회 비판은 부르주아지의 보수적 본능을 자극하여, 그들이 자유에 대해 지니고 있던 과도한 열정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도 있었다.

양보의 법령: 협동조합과 파업의 합법화

1863년 5월 23일 법률은 영국의 선례처럼 노동자들이 협동조합을 조직해 저축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이어진 1864년 5월 25일 법률은 파업을 조직하여 더 나은 노동 조건을 요구할 권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황제는 나아가 노동자들이 고용주들을 본받아 자신들의 이익을 지속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직업조합, 즉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도 허용했다.

마침내 노동자들이 영국 노동조합의 협소한 실용주의를 넘어, 전 세계 모든 노동 계급에 공통되는 비전을 추구하고자 할 때에도 황제는 장애를 세우지 않았다. 그 결과 지도자 앙리 톨랭(Henri Tolain)은 국제노동자협회, 훗날의 제1인터내셔널을 창설할 수 있었다. 다만 황제는 동시에 저축 장려와 대중 계층의 생활 조건 개선을 명목으로 고용주들이 내놓은 각종 조치 역시 아낌없이 지원하며 균형을 꾀했다.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문호 폐쇄

노동자들의 지지를 확보했다고 확신하게 된 황제는, 절대주의 체제의 대변자였던 루에르(Eugène Rouher)를 내세워 자유주의 진영이 제기한 모든 요구를 일괄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