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것들을 향한 방문객들의 발걸음
전시 궁전에 들어선 방문객들은 카탈로그가 안내하는 논리적 순서를 좇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방사형으로 뻗어 나간 통로 하나를 따라 원주의 중심으로 다가서면, 사람들은 저마다 눈길을 끄는 곳으로 곧장 향했다. 생고뱅(Saint-Gobain)의 거울, 세브르(Sèvres)의 도자기, 고블랭(Gobelins)의 융단, 바카라(Baccarat)와 보헤미아산 크리스털 유리가 그 대상이었다. 이어서 크리스토플(Christofle)의 탁자 장식품들과, 한층 절제된 아름다움을 지닌 프로몽-뫼리스(Froment-Meurice)의 걸작들을 감상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할 가치가 있었던 것은 새로운 발견, 새로운 산업 응용을 향한 노력들이었다.
기계 회랑: 증기를 넘어 새로운 동력으로
모든 회랑을 포괄하듯 가장 바깥쪽에 자리한 기계 회랑은 볼거리가 풍부했다. 낡은 증기 기계들 곁에는 가스나 압축 공기처럼 또 다른 동력에 반응하는 장치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광산용 채굴 기계들은 곧 맡게 될 중요한 역할에 걸맞게 개량을 거듭하고 있었다.
철도 부문의 전시 역시 매우 교훈적이고 시사하는 바가 컸다. 당시 다른 모든 산업을 지배하려는 기세였던 이 거대한 운송 산업은 전성기의 진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속도를 내는 데만 만족했고, 실현된 경이에 탄복한 대중과 기술자들조차 잠시 성공 위에 안주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새로운 진보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장거리 여행의 편의를 보장하는 각종 규격 객차가 등장했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여러 장치와 신호 체계가 고안되었다.
원자재 회랑: 알루미늄이라는 신기원
기계 회랑에서 원자재 회랑으로 옮겨가면, 풍경은 매력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상당히 소박했다. 그럼에도 그곳에는 많은 호기심을 끄는 것이 있었다. 가볍고 동시에 단단한 새로운 금속, 바로 알루미늄이 그것이었다. 당시 알루미늄은 화학적 제련법으로 소량만 생산되어 금보다 귀하게 여겨질 정도였고, 나폴레옹 3세가 특별히 아껴 쓴 것으로도 유명했다. 또한 상당히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으면서도 당시에는 거의 쓰이지 않던 '석유'라 불리는 유류 역시 눈에 띄었다.
섬유 산업의 기록: 면과 실크의 시련
이어지는 회랑들, 특히 의복 회랑에서는 모든 섬유 산업의 행방을 짚어볼 수 있었다.
면방직 산업에는 1861년부터 1865년까지, 즉 미국 남북전쟁으로 원면 공급이 끊기며 업계를 짓누른 위기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래서 전시회 일부에서는 덜 정교하고 덜 견고한 제품들이 발견되었다. 비단 산업 역시 다소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다. 세벤(Cévennes) 지방 전체를 황폐화시킨 누에 병, 이른바 페브린(微粒子病)의 영향을 받았을 뿐 아니라 유행의 급격한 변화에도 흔들렸다.
사람들은 이제 드레페리나 가구 장식에는 어울릴지 몰라도 의상에는 과장된 과잉이자 취향의 타락일 뿐인 화려한 장식임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크리놀린이 사라지는 추세였다. 이 현명한 변화는 리옹 방직업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혔고, 창작의 정교함이나 다양성 면에서 샹드마르(Champ-de-Mars) 박람회는 전 대회와의 비교를 버티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대중을 위한 전시: 값싼 물품과 모범 주택
일련의 회랑들은 값싼 물품들에 할애되었다. 언뜻 보기에 전체적인 모습은 다소 천박한 난잡함이었고, 유치함이나 서투름을 지적하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결점들은 전시를 기획한 관대한 구상 앞에서는 사소한 흠집에 불과했다. 이 전시는 공원 곳곳에 흩어진 대중용 모범 주택으로 완결되었다. 솔선수범하고자 했던 황제는 노동자 주택 부문에 직접 출품하여 스스로 참가자의 반열에 올랐다.
노동사 회랑과 미술 회랑
원주 중심에 아주 가까운 곳에는 이른바 노동사 회랑이 있었다. 이곳은 실질적인 회고 박물관으로, 인류의 노동 도구와 기술의 변천을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노동사 회랑과 함께 미술 회랑 역시 궁전의 중심을 차지했다. 출품 작품은 1855년 1월 1일 이후 제작된 것으로 한정되었으므로, 이전 시대를 빛낸 거장들의 작품을 찾는 것은 허사였다. 다소 축소되기는 했지만 프랑스 화파는 여전히 샹드마르 박람회의 선두에 서 있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이폴리트 플랑드랭(Hippolyte Flandrin)을 비롯해 제롬(Gérôme), 메송니에(Meissonier), 카바넬(Cabanel), 테오도르 루소(Théodore Rousseau), 코로(Corot), 밀레(Millet), 브르통(Breton)이 그 주역이었다. 조각 분야에서도 프랑스의 우위는 마찬가지로 뚜렷했는데, 크로(Crauk), 카르포(Carpeaux), 팔기에르(Falguière), 기욤(Guillaume)이 그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