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하늘 위의 우편 경쟁, 에어 블루가 이룬 기적

항공 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은 수많은 분야에 변화를 가져왔지만, 그중 가장 큰 수혜자 중 하나는 단연 우편이었다. "모든 우편물의 미래는 하늘에 있다." 이 말을 남긴 사람은 아에로포스탈(Aéropostale)의 영혼이라 불리던 디디에 도라(Didier Daurat)였다.

비현실적인 현실에 대한 반격

아에로포스탈이 해체된 후, 도라는 프랑스 항공우편 체계를 만드는 일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그가 주목한 것은 당시의 비합리적인 현실이었다. 파리에서 앙제까지 편지 한 통이 걸리는 시간은, 비행기로 파리에서 카사블랑카까지 가는 시간의 두 배나 되었던 것이다.

에어 블루의 탄생

도라는 통신부 장관 조르주 망델(Georges Mandel)의 지원과 베포 드 마시미(Beppo de Massimi)의 협력을 얻어 '에어 블루(Air Bleu)'를 설립했다. 아름다운 이름에는 그만큼 웅대한 야망이 담겨 있었다. 전국의 주요 도시를 항공 노선으로 연결하여, 아침에 파리에서 툴루즈나 낭트로 보낸 편지의 답장을 같은 저녁에 받는 것이 목표였다.

늘 그렇듯 도라는 미루지 않았다. 그는 즉시 항공기를 발주했고, 넉 달 뒤 세 대의 항공기가 인도되었다. 180마력 르노 방갈리(Renault Bengali) 엔진을 장착한 소형 코드롱(Caudron)기들이었다.

1분의 경주

1935년 7월 10일, 늘 구겨진 칼라를 고쳐 매던 조르주 망델이 첫 우편 자루를 조종사 레몽 바니에(Raymond Vannier)에게 건넸다. 바니에는 자신의 비행기를 평범한 우편 운송기처럼 몰지 않았다. 마치 레이싱 파일럿처럼 몰았다. 그는 투르, 푸아티에, 앙굴렘, 보르도에 차례로 착륙한 뒤 파리로 돌아왔다.

경유지 체류 시간은 겨우 1분. 우편물을 내리고, 서류에 서명하고, 동료들과 악수하는 데 딱 1분이었던 것이다. 겨울철에만 3분이 허용되었다.

확장되는 항공망, 쌓여가는 기록

해가 지날수록 에어 블루의 항공망은 빠르게 확장되었다. 1936년 봄에는 22개 도시를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도라는 어디에나 나타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며 조종사들의 사기를 북돋았다. 강풍, 결빙, 폭설, 안개 같은 악천후 속에서도 비행은 멈추지 않았다.

1939년 여름이 끝날 무렵, 우편기들은(당시에는 쌍발 엔진의 '고엘랑(Goéland)'기) 총 200만 킬로미터를 비행하며 538톤의 우편물을 운송했고, 정시 운항률은 98~99.5%에 달했다.

조종사의 실력과 기술의 진보

이러한 일상적인 승리는 무엇보다 조종사들의 뛰어난 비행 기량 덕분이었다. 동시에 항공 항법 장비의 발전도 두드러졌다. 자이로스코프 나침반과 인공 수평선을 갖춘 '스페리(Sperry)' 계기가 등장했고, 무선 유도 기술의 발전으로 시야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비행이 가능해졌다.

항공기 설계의 새로운 지평

항공기의 외형 역시 세련되게 다듬어졌다. 기체는 풍동 실험을 통해 더욱 정교하게 연구되었는데, 프랑스에서는 샬레 뫼동(Chalais-Meudon)의 풍동 시설이 활용되었다. 엔지니어들은 이제 비행 중 항공기에 작용하는 공기역학적 현상을 직접 관찰할 수 있었다. 곡면 플랩과 슬롯 윙(틈새 날개)은 항공기의 안정성을 한층 끌어올렸다.

컴프레서(과급기)는 엔진 출력을 높였고, 가변 피치 프로펠러는 추진 효율을 크게 개선했다. 한편 독일이 하인켈 He 112와 He 116으로 수행한 결정적인 시험 결과는, 머지않아 제트기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예감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