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라오스 북부 전투: 메콩강을 건넌 1,000명의 기나긴 후퇴

인도차이나 북부 라오스에 배치된 프랑스군 부대는 규모가 매우 작았습니다. 보병 3개 중대(제4/10 R.M.I.C.), 유럽인 야영 중대, G.I. 소대 10개, 그리고 외부에서 파견된 3개 낙하산 분견대(파브르 대위, 세르 대위, 투알 대위)가 전력의 전부였습니다. 그럼에도 이 북부 라오스 집단은 5월 말까지 인도차이나 영토 안에서 버텼고, 마침내 중국으로 철수하면서 임펠트 소령이 지휘하는 게릴라 부대를 남겨 두었습니다. 이 부대는 일본 패망의 순간까지 저항을 이어갔습니다.

트란닌 고원 방어 임무

마예르(Mayer) 지휘관이 이끄는 부대의 첫 번째 임무는 트란닌(Tran Ninh) 고원으로의 접근을 차단하여 좌평원(Plain of Jars) 활주로의 자유로운 운용권을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 활주로가 사용되지 않는다면, 부대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인도차이나 영토에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일본군의 기습과 비엔티안 탈출

1945년 3월 10일, 태국 농카이(Nongkhai)에서 건너온 일본군이 치나이모(Chi Nai Mo) 훈련소를 기습했습니다. 이는 일본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전역을 장악하기 위해 감행한 대규모 작전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러나 훈련소 수비대가 벌인 완강한 저항 덕분에 비엔티안(Vientiane)에 있던 프랑스군 병력들은 같은 날 해 질 녘 수도를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파브르 대위(팍사네 지역), 투알 대위(R.C. 13), 세르 대위(R.C. 7)가 이끄는 분견대들의 활약에 힘입어 트란닌 고원은 3월 20일경까지 계속 사용 가능한 상태로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예르 지휘관은 이 무렵 더 이상 활주로를 활용할 계획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루앙프라방으로의 전투 후퇴

두 번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부대는 전투 후퇴에 나섰습니다. 처음에는 3월 말까지 루앙프라방(Luang Prabang) 방면으로 수렴하며 물러났습니다. 3월 27일에는 제13국도(R.C. 13) 북부, 푸쿰(Phou Koum) 인근에서 일본군에게 상당한 손실을 입혔습니다. 4월 초의 팍벳(Pak Vet) 전투 역시 일본군의 루앙프라방 진입을 크게 늦추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약 1,000명의 병력은 5월 25일경, 무엉싸이(Muong Sai) 동북쪽 30km 지점에 있는 반싸이(Ban Sai)에서 메콩강을 건너며 상부 라오스를 벗어났습니다.

현지 주민들의 결정적 지원

이처럼 길고 험난한 후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현지 주민들이 프랑스군에 보낸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었습니다. 식량과 정보, 길 안내에 이르기까지 라오스 민중의 협조가 없었다면 이 부대의 생존과 철수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