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로저 반덴베르게(Roger Vandenberghe, 1927~1952)는 제2차 세계대전과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프랑스 군인이다. 열아홉 살에 인도차이나에 도착해 전직 포로들로 구성된 '블랙 타이거(Black Tiger)' 코만도를 이끌고 적진 깊숙이 침투하는 게릴라전을 펼쳤으며, 무려 8차례나 부상을 입고도 전선을 지킨 '전쟁의 야수'이자 전설적인 군인이다. 1952년 1월, 스물네 살의 나이로 남딘에서 암살당하기까지 그의 짧고 강렬한 생애는 프랑스 군사사(史)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초기 생애와 제2차 세계대전
1927년 10월 26일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공공부조(Public Assistance) 출신의 불우한 청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2월 4일, 보주(Vosges) 산맥 전투에서 지뢰를 밟아 첫 부상을 입으며 참전의 신고식을 치렀다. 종전 후 그는 자원하여 인도차이나로 향했고, 그곳에서 진정한 군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인도차이나 전쟁: 상처뿐인 영광
잇따르는 부상과 훈장
1947년 10월 23일 체펌호아(Chfêm Hoa)에서 파편상을 입은 것을 시작으로, 1951년 9월 16일 남후안(Nam Huan)까지 총 8차례에 걸쳐 허벅지, 팔, 가슴 등 온몸에 총상과 파편상을 입었다. 특히 1949년 1월 랑디외(Lang Dieu) 지뢰 폭발로 왼쪽 허벅지와 오른팔에 중상을 입었고, 1951년 5월 30일 닌빈(Ninh Binh) 전투에서는 양다리에 총상을 입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1948년 4월 1일 하사관으로 진급했고, 1948년 12월 6일 군사 메달(Médaille militaire), 1949년 2월 26일 레지옹 도뇌르(Légion d'honneur) 기사장을 수여받았다. 제2차 대전 십자무공훈장(Croix de guerre 1939-1945)과 해외 작전 십자무공훈장(Croix de guerre des théâtres d'opérations extérieures) 14회 인용이라는 화려한 전과를 남겼다.
'블랙 타이거' 코만도의 탄생
그는 인도차이나의 지형과 인민, 전쟁의 본질을 본능적으로 꿰뚫어 보았다. 초기 포로들을 포섭해 결성한 '블랙 타이거' 코만도는 전원 베트남인(전직 비엣민)으로 구성되었으나, 반덴베르게의 카리스마와 전술적 천재성 아래 프랑스군 최정예 부대로 거듭났다. 그는 계급장도 달지 않은 채 검은 파자마와 누비 재킷 차림으로 적진을 누볐고, 비엣민은 그에게 현상금을 걸 만큼 두려워했다.
드 라트르 드 타시니 원수와의 만남
1951년 5월 11일, 푸리(Phu Ly)에서 벌어진 '메두사 작전' 종료 후 열린 지휘관 회의 석상에서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20km 강행군을 감행해 드 라트르 원수를 알현한 반덴베르게는 "위대한 지도자를 뵙는 것은 군인의 영광"이라며 경례했다. 드 라트르는 이 젊은 준위에게 "마치 호랑이가 이빨과 발톱, 방아쇠에 더해 사냥 면허증까지 받은 격"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날의 악수 사진은 그를 단숨에 스타로 만들었으며, '장 왕(King Jean)'이라 불리던 드 라트르의 원로원 멤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상징이 되었다.
전설이 된 '데이 강 전투'와 닌빈의 사투
전략적 요충지, '구멍'을 노린 지압의 공세
1951년 5월, 비엣민 총사령관 보응우옌 지압(Vo Nguyen Giap)은 통킹 삼각주 중앙, 팟디엠(Phat-Diem)과 푸리 사이 80km의 빈틈('구멍')을 노려 3개 사단(304, 308, 320)을 투입한 대공세를 펼쳤다. 정치적 약속(테트 공세)과 전략적 필연성(쌀 수송로 확보)이 맞물린 승부수였다.
서쪽 봉우리를 사수하라
5월 28일 지압의 공세가 시작되자, 닌빈의 석회암 봉우리(서쪽·남쪽 봉우리)는 최후의 보루가 되었다. 남쪽 봉우리는 함락되었고, 서쪽 봉우리의 드 라트르 중위(원수의 아들) 소대만 고립된 채 버티고 있었다. 강비에즈(Colonel Gambiez) 대령은 유일한 돌파구로 반덴베르게 코만도를 지목했다. "너만이 비엣민 사이를 뚫고 갈 수 있다. 봉우리에 올라 적을 묶어둬라. GMNA(북아프리카 기동군)가 도착할 때까지 버텨라."
죽음을 무릅쓴 100미터, 그리고 돌(Dohl)
반덴베르게는 해군 상륙정(LCM)으로 키커우(Ky Cau) 부두에 상륙, 100미터의 개활지를 돌파해 수직 절벽을 기어올랐다. 120명의 코만도 대원이 수류탄과 단검, 기관단총으로 320사단 연대 병력을 후방에서 강타했다. 반덴베르게의 충직한 군견 '돌(Dohl)', 반 늑대 반 개인 이 맹수는 매복해 있던 비엣민 저격수의 목을 물어뜯어 주인의 생명을 구했다.
전세를 바꾼 2시간
오전 9시, 코만도는 서쪽 봉우리를 탈환했다. 이 기습으로 지압의 선봉 부대는 2시간 동안 발이 묶였고, 그 사이 에동(Colonel Edon) 대령의 GMNA가 포병을 전진 배치할 수 있었다. '데이 강 전투(Battle of the Day)'는 이후 24일간 이어졌고, 비엣민은 1만 2천 명 전사, 2천 명 포로라는 막대한 손실을 입고 3개 사단이 궤멸되었다.
최후와 유산
닌빈의 영웅은 호아빈(Hoa Binh) 탈환전(1951년 11월) 선봉에 섰고, 치네(Chi-né) 석회암 동굴 지대에서 비엣민을 소탕했다. 하지만 전장에서 얻지 못한 승리를 비엣민은 간계로 앗아갔다. 1952년 1월 6일, 남딘의 자신의 초소에서 베트남인 부하(또는 첩자)의 총격에 암살당했다. 그가 그토록 존경하던 드 라트르 원수가 사망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이었다.
남딘 공동묘지 263번 묘지에 잠든 그는 "모험가이자 전쟁의 야수"라는 평가와 "자신이 조국으로 선택한 땅을 해방시키고자 했던 군인"이라는 추모를 동시에 받는다. 그의 무덤은 오늘날에도 인도차이나 전쟁의 비극과 영웅담을 증언하는 역사의 현장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