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경계가 굳어진다 — 이아드랑 계곡의 밤과 새벽

경계가 굳어진다 — 이아드랑 계곡의 밤과 새벽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무어(Moore) 중령은 방어 태세를 최대한 촘촘하게 재정비했다. 방어용 야포와 박격포 사격이 유기적으로 조율되었고, 그는 착륙장에 남아 있는 두 대의 헬리콥터를 최후의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배치를 마무리했다.

패스파인더의 위험한 임무

제229항공대대 패스파인더(Pathfinder, 헬기나 낙하산 부대를 임시 착륙 지역으로 안내하도록 훈련된 병력)는 최종 착륙 예정지를 가로막고 있던 나무들을 폭약으로 제거하고, 야간에 대비해 신호등을 설치했다. 이 작업 내내 패스파인더들은 적의 사격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다행히 인명 손실 없이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주변에서는 지치고 목마른 기병들이 엎드려 사격할 수 있는 진지를 파내면서, 배급된 건조 식량에 딸린 잼을 삼켜 조금이라도 수분을 보충하고 있었다. 브라운(Brown)이 약속했던 대로 제2대대 B중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 병사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오후 7시 15분에는 탄약, 물, 의료품, 식량 등의 보급물자가 도착했다. 얼마 후 작전장교가 화력통제관 두 명과 함께 착륙했지만, 그날 이루어진 것은 여기까지였다. 짙은 연기와 어둠의 장막 아래에서 기병 제7연대 제1대대의 나머지 병력은 적의 다음 움직임을 기다렸다.

고립된 소대, 밤의 공방

고립된 새비지(Savage) 중사의 소대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위치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지점까지 무전으로 포병 사격을 유도했다. 사소한 오차조차 용납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해서 제21포병대대는 새비지의 방어선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게 되었다.

베트남군이 산 능선 약 300미터 위쪽에서 나팔을 불기 시작하자, 미군은 또 한 차례의 돌격이 임박했음을 직감했다. 새비지가 북베트남군의 말소리를 들었을 때, 그는 조명탄으로 지형을 밝히며 15분간의 항공 폭격을 퍼부었다. 적은 다소 물러났지만, 조명은 동시에 미군 진지의 위치도 드러내고 말았다. 결국 미군은 한 시간가량 후에 시작된 또 다른 격렬한 공격을 막아내야 했다.

적은 주 방어선 역시 시험해 보았다. 북베트남군 제66연대 제8대대가 구원을 위해 도착한 것이다.

11월 15일 새벽, 구출 작전의 시작

11월 15일 첫 여명과 함께 무어는 중대장들을 소집해 새비지 소대의 구출 작전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동시에 방어선 주변 지형을 200미터 깊이까지 철저히 수색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미군은 알지 못했다. 적이 밤새 포격 사이로 기어들어와 미군 전선 바로 앞까지 접근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기병들이 개활지로 전진하자, 그들은 강렬한 교차 사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여러 병사가 쓰러진 동료를 구하려 달려갔다가 그대로 총탄에 쓰러졌다. 이렇게 하여 불과 몇 초 사이에 C중대장과 그 휘하의 장교 두 명이 40미터도 채 되지 않는 거리의 기관총 사격에 중상을 입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