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월터 노보트니 - 독일 공군 최강의 에이스, 258회 격추의 전설

승리

발터 노보트니(Walter Nowotny) 소령은 제2차 세계대전 최고의 에이스 중 한 명으로, 공인된 258회의 격추 기록을 보유하며 독일 공군(Luftwaffe) 전투기 조종사 순위에서 5위에 올라 있다.

늦은 시작

1920년 12월 7일 오스트리아 그뮌트(Gmünd)에서 태어난 그는 1939년 10월에야 독일 공군에 입대했다. 당시 전쟁 초기에는 훈련의 질이 여전히 매우 높았기 때문에, 그는 젊은 조종사에게 주어진 최고 수준의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이 그가 1941년 2월에야 제54전투비행단(JG 54) "그륀헤르츠(Grünherz, 푸른 하트)"로 전속되어 전선에 투입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첫 전투는 험난했다. 1941년 7월 19일, 오셀 섬 근해에서 첫 3회의 격추 기록을 세운 직후 그 자신도 적의 사격을 받고 발트해에 Bf 109를 불시착시켜야 했다. 그는 이 강제 착수에서 살아남았지만, 손으로 노를 저으며 고무보트 위에서 해안으로 돌아오기까지 3일을 버텨야 했다. 그가 50회 격추의 벽을 넘는 데에는 단 1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1942년 8월 4일, 하루 동안 소련군 항공기 7기를 격추하며 이 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정확히 한 달 후인 1942년 9월 4일에는 기사십자장(Ritterkreuz)을 수훈했고, 같은 해 10월 25일에는 제9/JG 54 비행중대장(Staffelkapitän)으로 임명되었다. 이는 갓 스물한 살의 젊은이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큰 책임이었다.

1943년: 에이스의 등장

발터 노보트니가 '무명' 상태에서 벗어난 것은 1943년 여름이었다. 6월부터 그는 연이어 승리를 거듭했다. 6월에 41승, 8월에 49승, 9월에 45승, 10월에 31승을 기록했다. 그는 6월 15일에 100번째, 8월 18일에 150번째, 9월에 200번째 승리를 거두었다. 이러한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하기 위해 그는 하루에 여러 대를 격추하는 날들을 연달아 보냈다.

* 1943년 6월 8일: 6승
* 1943년 8월 13일: 9승
* 1943년 8월 18일: 6승
* 1943년 8월 21일: 7승
* 1943년 9월 1일: 10승
* 1943년 9월 2일: 6승
* 1943년 9월 14일: 6승
* 1943년 10월 9일: 8승

훈장 역시 그의 폭주하는 성공 행진을 따라갔다. 9월 4일에는 곡엽장(Eichenlaub)을 받았고, 같은 달 22일에는 37번째 검검장(Schwerter) 수훈자가 되었다. 1943년 10월은 그에게 모든 기록이 쏟아진 달이었다. 열흘 만에 32승을 거두었고, 1943년 10월 14일에는 세계 최초로 공인 250승의 관문을 넘은 조종사가 되었다. 442번의 출격 끝에 얻은 이 놀라운 기록 덕분에 그는 독일군에서 여덟 번째로 다이아몬드장(Brillanten)을 수여받은 군인이 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22세였다. 이후 그의 기록을 넘어선 조종사는 에리히 하르트만, 게르하르트 바르크호른, 귄터 랄, 오토 키텔 단 네 명뿐이다.

1944년: 뛰어난 조종사의 최후

1944년 2월, 그는 프랑스에 주둔한 제101교육비행단(Schulgeschwader 101)의 지휘관으로 5개월간 임명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뛰어난 교육자임을 입증했으며, 그의 지도와 실질적인 조언 덕분에 여러 제자들이 이후의 전투에서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에이스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이어 1944년 7월, 그는 새로운 메서슈미트 Me 262 제트기를 장비한 실험 부대를 창설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코만도 노보트니(Kommando Nowotny)'를 창설하여 부대를 훈련시키고, 4발 폭격기 B-17과 B-24와의 전투에 투입해 이 중 3기를 격추했다. 이것이 그가 서부 전선에서 거둔 유일한 전과였다.

1944년 11월 8일, 이륙 직후 목격자들은 그의 Me 262가 화염에 휩싸여 추락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죽음에 대한 정확한 경위는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어쨌든 그의 적수였던 프랑스 에이스 피에르 클로스테르만(Pierre Clostermann)의 말대로, 그의 죽음은 어느 진영의 조종사들에게도 무덤덤할 수 없는 충격을 안겨주었다. 258승의 에이스가 지닌 명성을 생각하면,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