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첫 열매: 진주만 기습 전야, 말레이 침공군의 출항

첫 열매: 진주만 기습 전야, 말레이 침공군의 출항

하이난 섬, 싼야 항의 조마스러운 대기

1941년 12월 2일 오후, 인도차이나 연안에 떠 있는 하이난 섬의 싼야(삼아) 항. 그곳에 자리한 일본 제25군 참모부에서는 군 수송을 총괄하는 게라 중좌가 참모들과 함께 지평선을 주시하고 있었다. 태국과 말레이 침공에 투입될 병력을 실어 나를 수송선 20척의 집결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그때까지 도착한 배는 겨우 3척뿐이었다.

수송선들은 일본 본토 항구는 물론 상하이, 광저우, 대만(포르모사)에서 출발해 왔다. 각 선장들이 명령을 잘못 이해했는지, 아니면 항해 도중 무슨 난관에 부딪혔는지 알 길이 없었다. 당시 무선 교신은 철저히 금지된 상태였기에 게라 중좌는 여러 기지에 전화를 돌려가며 확인했지만, 정확한 소식을 얻지 못했다. 불안감은 갈수록 커져갔다.

그러나 해 질 녘, 지평선 여러 곳에서 작은 연기 기둥이 포착되었고 배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2월 3일 정오까지 모든 수송선이 항구에 안전하게 집결했고, 제25군 선발 부대와 제3비행집단의 승선 작업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승선 작업 중 벌어진 두 가지 소동

승선 과정에서는 두 가지 해프닝이 있었다. 하나는 제3비행집단의 젊은 장교들이 다리미판, 욕조, 소파 같은 생활용품을 몰래 배에 실으려다 적발된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야마시타 도모유키 군 사령관이 선두 함선에 직접 승선하겠다고 고집을 부린 일이었다. 다행히 두 건 모두 신속하게 수습되었고, 12월 4일 아침에는 병력과 함께 총기, 탄약, 식량 등 모든 장비의 선적이 끝났다. 드디어 작전 개시 준비가 완료된 것이다.

현장 지휘관에게 맡겨진 개전 시각

당시 일본은 1931년부터 중국과 전쟁 중이었고, 1941년 7월에는 인도차이나를 점령한 상태였지만, 아직 영국이나 미국과는 공식적으로 교전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미일 간 무역 금수 협상은 사실상 결렬 직전까지 몰려 있었다. 미국이 마지막 순간까지 양보하지 않는 한, 적대 행위는 12월 8일 일요일 새벽 개시될 운명이었다.

주목할 점은 개전의 구체적인 시각을 각 현장 지휘관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대본영이 요구한 것은 오직 '예정된 시각에 목표를 달성하라'는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야마시타 부대가 4일에 출항한 반면, 다른 부대들은 5일이나 6일이 되어서야 움직였고, 진주만 공격에 투입될 항공부대는 7일 밤까지 출격하지 않았다. 물론 정식 선전포고 따위는 처음부터 문제 삼지 않았다.

12월 2일 밤, 야마시타에게 내려온 최종 명령

야마시타 상장이 최종 명령을 받은 것은 12월 2일 저녁이었다. 명령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 군사 작전 개시일은 12월 8일로 확정한다.
  • 제25군은 해군과 협력하여 말레이 점령을 목표로 하는 작전을 개시한다.
  • 군 사령관은 위 명령에 따른다. 단, 해당 날짜 이전에 미일 협상이 성공적으로 타결될 경우, 군사 작전은 즉시 중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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