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조지 '스크루볼' 벌링(George Beurling) – 몰타의 전설, 31기 격추의 에이스

격추 전적

31기

약력

조지  스크루볼  벌링(George Beurling) – 몰타의 전설, 31기 격추의 에이스
1921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태어난 조지 벌링은 영국으로 건너가 1940년 9월 왕립공군(RAF)에 입대했습니다. 조종사 훈련을 마친 뒤 1942년 봄, 하사(Sergeant) 계급으로 스피트파이어 Mk V를 장비한 제41비행대대에 배속되었고, 같은 해 5월 프랑스 해안 상공에서 첫 격추 기록(Fw 190 2기)을 세웠습니다.

6월에는 '살리언트 작전(Operation Salient)'의 일환으로 몰타로 이동하여, 도착 즉시 타칼리(Takali) 기지의 제249비행대대에 배치되었습니다. 벌링은 곧바로 전투기 조종사로서의 실력 향상에 매진했습니다. 특히 예각사격(deflection shooting) 기량을 갈고닦아 포위된 섬의 하늘에서 생존 확률을 크게 높였습니다. 그는 담배도 술도 욕설도 하지 않는 검소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특별한 사람이나 사물을 보면 "구피(goofy, 괴짜)"라는 표현을 즐겨 썼는데, 이것이 훗날 그의 별명이 되었습니다.

1942년 7월 추축국은 몰타 섬에 대한 일련의 총공세를 개시했습니다. 이 절박한 상황 속에서 벌링은 비로소 진가를 유감없이 드러냈습니다. 단 한 달 만에 무려 적기 15기(모두 이탈리아 및 독일 전투기)를 격추하고 6기에 손상을 입혀 놀라운 킬률을 기록했으며, 다음 달에는 소위(Pilot Officer)로 승진했습니다.

조지  스크루볼  벌링(George Beurling) – 몰타의 전설, 31기 격추의 에이스
10월에는 추축국의 대규모 공습이 재개되었습니다. 특히 14일의 치열한 공중전에서 벌링은 Ju 88 1기와 Bf 109 2기를 격추하는 기록을 세웠지만, 파편에 뒤꿈치를 다쳐 자신의 스피트파이어(BR173/D)에서 낙하산으로 탈출해 바다에 착수했고, 신속하게 구조되었습니다. 수훈십자장(DSO)을 수여받은 후 같은 달 말 항공 편으로 섬을 떠나 영국으로 돌아가 치료와 요양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벌링은 왕립캐나다공군(RCAF)으로 전속되어 1943년 가을, 스피트파이어 Mk IX를 타고 전선에 복귀했습니다. 처음에는 제403비행대대, 이후에는 제412비행대대에서 복무하며 이 시기에 Fw 190 2기를 전과에 추가했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전투기 조종사임에도 불구하고 권위를 거부하는 성격 탓에 상관들 사이에서 많은 적을 만들었고, 이 시기에 군법회의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눈부신 전과 덕분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1944년 4월 캐나다로 귀국했으나 추가적인 규율 문제를 일으켰고, 같은 해 10월 자원 퇴역이 허가되었습니다.

군복을 벗은 후의 삶 역시 벌링에게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3년 동안 그는 여러 직장을 전전하며 민간인 생활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1948년 봄, 새로 건국된 이스라엘이 창설한 초창기 공군에서 비행하라는 제안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의 첫 임무는 노르듀인 노르스만(Norduyn Norseman) 경수송기를 이스라엘까지 몰고 가는 것이었지만, 5월 20일 로마에서 이륙한 직후 기체가 공중에서 폭발해 추락하면서 그와 부조종사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보타주가 의심되었으나 끝내 입증되지는 못했습니다.

전쟁이 종결될 무렵, 조지 "스크루볼(Screwball)" 벌링은 31기의 격추, 1기의 공동 격추, 9기의 손상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그중 단 2기를 제외한 모든 전과는 스피트파이어 Mk V를 타고 이루어낸 것입니다. 이 기록은 그를 해당 기종 최고의 에이스 반열에 올려놓기에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