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크루세이더(Crusader) 전차: 북아프리카 사막을 질주한 영국의 순항전차

크루세이더(Crusader) 전차: 북아프리카 사막을 질주한 영국의 순항전차

제2차 세계대전 초반 북아프리카 사막에서 영국 기갑부대의 주력으로 활약한 크루세이더(Crusader)는 무엇보다 빠른 기동성으로 이름난 순항전차였다. 화력과 방어력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사막의 광활한 전장에서 그 속도는 부대의 확고한 신뢰를 얻었다. 형식별 제원부터 개발 배경, 실전 운용까지 크루세이더의 모든 것을 정리했다.

크루세이더 I, II, III — 형식별 제원

유형: 순항전차(cruiser tank)
승무원: 5명(마크 I), 4~5명(마크 II), 3명(마크 III)
무장: 크루세이더 I은 2파운드 포와 7.92mm 베사(Besa) 기관총 2정, 크루세이더 II는 2파운드 포와 7.92mm 베사 기관총 1~2정, 크루세이더 III는 6파운드 포와 7.92mm 베사 기관총 1정

장갑: 최소 7mm~최대 40mm(마크 I), 최소 7mm~최대 49mm(마크 II), 최소 7mm~최대 51mm(마크 III)

치수와 성능

전장: 5.99m
전폭: 2.64m
전고: 2.23m
전투 중량: 17.2t(마크 I·II), 20t(마크 III)
접지압: 1.04kg/cm²
엔진: 너필드 리버티(Nuffield Liberty) 12기통 수랭식 가솔린 엔진, 340마력

도로 최고 속도: 43.2km/h
항속 거리: 160km
수직 장애물 통과 능력: 0.685m
참호 통과 폭: 2.59m
등판 능력: 60%
복무 기간: 영국군에서 1939년부터 1943년까지

개발 배경

크루세이더는 외형적으로 상당 부분 닮은 코버너터(Covenanter)의 개량형이라 할 수 있다. 코버너터의 설계는 전간기인 1937년에 시작되었으며, 당시 순항전차 마크 IV(A13)와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크루세이더 역시 이들 순항전차와 같은 기본 설계를 따랐지만, 제원상으로는 '중전차'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주어진 중량과 크기 제한 안에서 이 규격을 충족하기란 쉽지 않았다.

주포가 2파운드 포에 불과한 전차에 '중전차'라는 명칭이 붙은 점도 다소 의외다. 그럼에도 이 규격은 당국이 기존 모델들의 단점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기존 전차들은 화력뿐 아니라 방어력도 부족했지만, 1939년 당시에는 이를 개선할 뚜렷한 대안이 없었다.

크루세이더는 너필드 메커나이제이션스(Nuffield Mechanizations Ltd.)가 주관하는 컨소시엄을 통해 생산되었으며, 총 5,300대가 양산되었다.

설계 특징

차체는 코버너터와 유사하여 긴 후방 갑판과 완만하게 경사진 글래시스(glacis, 차체 전면 경사 장갑)를 갖추었다. 섀시는 두 모델 모두 크리스티(Christie) 현가장치를 채택했는데, 크루세이더는 보기 바퀴가 하나 더 추가되고 스프링이 차체 내부에 수납된 점이 달랐다.

이 현가장치야말로 크루세이더의 최대 장점이었다. 공식 최고 속도인 시속 43.2km를 훨씬 웃도는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북아프리카 전선의 정비 요원들은 속도 조절기를 풀어 리버티 엔진의 출력을 끌어올렸고, 전차는 종종 시속 64km까지 달리기도 했다. 크리스티식 보기 바퀴는 이런 무리한 주행에도 상당히 견고하게 버텼으며, 승무원이 받는 충격도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더 고생한 쪽은 엔진이었다.

차체는 관례에 따라 세 개의 구획으로 나뉘었다. 초기 두 형식에서는 조종수가 차체 전방에서 차체 기관총 사수와 함께 탑승했다. 크루세이더 I은 차체 전면 장갑판 위의 작은 보조 포탑에 기관총을 장착했으나, 마크 II에서는 볼 마운트 방식으로 바뀌었고, 마크 III에서는 내부 공간 부족—특히 탄약 등 물자 수납 공간의 부족—때문에 아예 삭제되었다.

공간 문제는 포탑 전투실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차장은 자신의 부하들보다 더 좁은 공간에서 차량 지휘, 포 장전, 심지어 무전기 조작까지 맡아야 했다. 2인승 포탑의 고질적인 약점이었다.

엔진은 구식이지만 오랜 세월 검증된 너필드 리버티로, 본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항공기 엔진이었던 것을 출력을 400마력에서 340마력으로 낮춰 탑재한 것이었다. 초기형 크루세이더는 냉각 계통에서 비롯된 심각한 엔진 문제를 안고 있었다. 환기 장치가 쉽게 손상되고 공기 여과기 청소도 어려웠다. 그러나 실전 경험과 정비 요원들의 요령 덕분에 이 문제는 차츰 해결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엔진은 만족스러운 신뢰성을 보여주었다.

실전 운용과 평가

크루세이더는 모든 초기 결함이 해결되기 전에 서둘러 실전에 투입되었다. 1941년 6월 첫 실전인 '배틀액스(Battleaxe)' 작전에서는 전투로 잃은 전차보다 고장으로 버려져 적에게 노획된 전차가 더 많았다.

그럼에도 크루세이더의 전차 생명은 계속되었다. 사막 전역의 주요 작전 대부분에 참여했으며, 엘 알라메인 전투 당일에는 6파운드 포를 장착한 크루세이더 III가 최전선에 섰다. 이 형식은 더 크고 낮으며, 솔직히 말해 미관이 좋지 않은 새 포방패를 갖추고 있었다. 이 포방패는 3인치 근접 지원 곡사포(close support howitzer)를 장착하는 용도로도 개조될 수 있었지만, 이 수정은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북아프리카 전역이 끝날 무렵, 크루세이더는 이미 구식이 되어 있었다. 일부는 이탈리아 전역에 참전했고, 일부 차체는 대공 차량이나 포병 견인차로 개조되어 북서유럽 전선에서 활약했다. 사막에서 이 전차의 빠른 속도는 부대의 신뢰를 얻었지만, 얇은 장갑과 빈약한 무장은 끝내 해결되지 못한 숙제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