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압박과 이탈리아 함대의 출항
독일은 동맹국인 이탈리아가 영국 수송선단을 공격하도록 강한 압박을 가했습니다. 1941년 3월 16일, 루프트바페(독일 공군)의 어뢰기가 동부 지중해에서 커닝엄 제독의 전함 3척 중 2척을 무력화시켰다는 발표로 이탈리아를 부추겼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루프트바페가 이탈리아에 지원을 약속한 상태였기에, 이탈리아가 추축국 동맹의 뜻에 거스르기는 어려운 처지였습니다.
야키노 제독의 작전 계획
함대 사령관 야키노 제독이 지휘하는 이탈리아 작전은 본토 항구에서 두 개의 순양함 편대를 동쪽으로 출격시켜, 크레타 섬 북쪽과 남쪽 해역을 소탕하는 것이었습니다. 북부 함대는 섬 동쪽 끝까지 최대한 접근하고, 남부 함대는 크레타 남서쪽 해상에 위치한 가브도스 섬까지 진출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작전에는 203mm 주포를 장착한 순양함 6척과 152mm 주포를 단 순양함 2척, 그리고 구축함 9척이 투입되었으며, 당시 이탈리아 해군이 보유한 최대 함선인 비토리오 베네토가 지원에 나섰습니다. 배수량 35,000톤의 신형 전함으로 381mm 포 9문을 갖추고 30노트의 속력을 낼 수 있는 강력한 함선이었습니다.
이탈리아 함대는 최대한 은밀하게 라스페치아, 타란토, 브린디시, 메시나의 기지를 떠났고, '소탕 작전'은 3월 27일 아침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루 종일 동쪽으로 항해하는 동안, 동맹국이 약속했던 공중 엄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선더랜드의 발견과 커닝엄의 기지
루프트바페의 부재가 눈에 띄었다면, 영국 왕립공군(RAF)은 단 한 대의 선더랜드 수상기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오후 12시 30분, 이 수상기는 시칠리아 동쪽 약 75마일 해상에서 크레타로 향하는 이탈리아 순양함 3척을 발견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 정박 중이던 전함 워스파이트, 밸리언트, 바럼을 출항시키기로 결심한 커닝엄 제독은, 함대 출항 사실이 되도록 늦게 알려지도록 밤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결정이 내려지자, 그는 적을 기만하기 위한 개인적 계획을 실행했습니다. 바로 여행가방과 골프채를 들고 육지로 상륙한 것입니다. 마치 오후와 밤을 기함에서 멀리 떠나 보낼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비토리오 베네토에는 이탈리아 함대를 위해 활약하던 통신 코드 해독 요원들이 있었고, 야키노 제독은 곧 선더랜드가 자신의 일부 함대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제 기습은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렇다고 함대 전체가 철수하면 이탈리아와 독일 사이의 관계가 다시 긴장될 판국이었습니다. 결국 자라, 폴라, 피우메 순양함과 호위 구축함들은 가브도스 인근 해역에서 나머지 이탈리아 함대와 합류했습니다.
추격전의 시작
다음 날 오전 7시 22분, 이탈리아군은 그리스 방면에서 진격해 오는 영국 함대를 발견했습니다. 프리덤위펠 부제독이 지휘하는 이 함대는 순양함 오리온, 에이잭스, 글로스터, 오스트레일리아 순양함 퍼스, 그리고 구축함 4척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양측 함대 중 이탈리아군이 화력과 속력 면에서 우위에 있었기에, 영국군은 적을 커닝엄 제독의 전함 쪽으로 유인하는 전술을 택해 후퇴했습니다.
이탈리아군은 추격하며 13마일 거리에서 포문을 열었고, 야키노 제독이 영국 기지에 너무 근접한 것은 아닌지 우려할 때까지 약 40분간 사격을 계속했습니다. 그는 서쪽으로 물러나 비토리오 베네토와 합류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프리덤위펠 역시 진로를 변경했고, 이제 추격당하던 영국군이 추격자의 위치로 뒤바뀌었습니다.
협공의 위기
오전 10시 58분, 오리온이 마침내 비토리오 베네토를 발견했습니다. 영국 함선들은 다시 방향을 틀어 커닝엄 함대 쪽으로 질주했으며, 연막 뒤에 몸을 숨긴 채 비토리오 베네토의 381mm 주포가 쏟아내는 집중 사포를 뚫고 달렸습니다.
그러나 영국 함선들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합니다. 남쪽에서는 이들을 추격해 온 이탈리아 순양함들이, 북쪽으로는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비토리오 베네토가 포물선을 그리며, 협공 포격에 걸릴 위험에 놓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