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허상에 불과했다. 독일군의 눈부신 성과 뒤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대가가 숨겨져 있었다.
초기 승리에 따른 막대한 희생
공세 개시 후 단 22일 만에 독일 기갑부대는 보유 전차의 절반 이상을 상실했다. 또한 7월 19일 현재 기준으로 무려 1,284대의 독일 항공기가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다. 이처럼 소모전의 양상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고, 7월부터 9월까지 독일·소련 전선의 전 구간에서 대규모 전투가 끊임없이 벌어졌다.
탈린 방어전
북서 방면에서 독일군은 발트 함대의 주요 기지인 탈린과 소련 제2의 도시 레닌그라드를 향해 진격해 왔다. 소련 육군은 해군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8월 28일까지 탈린을 끝까지 사수했다. 그러나 레닌그라드 상공에 드리운 위협을 분산시키기 위해 최고 지휘부는 도시를 포기하고 해상 철수를 명령했다.
제공권 아래서의 위험한 항해
발트 함대가 핀란드만의 크론슈타트로 이동하는 과정은 역사상 손꼽히는 위험한 작전이었다. 당시 독일 공군은 발트 해 상공의 절대적인 제공권을 장악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공습 속에서 군함과 수송선, 보조 선박 등 총 195척으로 구성된 함대가 출항했고, 그중 53척이 격침되거나 파괴되는 참담한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이 노린 발트 함대 괴멸이라는 목표는 결국 좌절되었다. 살아남은 함대는 크론슈타트에 안전히 도착해 정비를 마친 뒤, 곧바로 레닌그라드 방어전에 투입되며 다시 전열에 합류했다. 이는 독일군의 압도적 우세 속에서도 소련 발트 함대의 저항 의지가 꺾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