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에서 시작된 경기병의 전통
후사르는 1458년 헝가리 왕 마티아스 코르비누스가 오스만 투르크에 맞서기 위해 창설한 경기병 부대에서 비롯된다. 프랑스군에는 1637년 처음 등장했지만, 기병 내에서 하나의 독립된 병과로 확립된 것은 1776년에 이르러서였다.
1789년 프랑스에는 베르셰니, 에스테르하지, 로쟁, 작센, 대령장군, 상보랑 등 6개의 후사르 연대가 있었다. 이들은 프랑스 혁명기에 14개까지 늘어났다가 1803년 10개로 축소되었으며, 1810년에는 네덜란드 후사르 연대의 편입과 스페인 전선의 재편성을 통해 두 개의 연대가 더 추가되었다.
정찰과 기습의 명수, 후사르의 전공
후사르는 정찰을 담당하고 적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임무를 맡으며 언제나 비범한 용기를 발휘했다. 이들은 군사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장면들을 남겼다. 1795년에는 얼음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는 네덜란드 함대를 텍셀(Texel) 해안에서 포획했고, 1806년에는 슈테틴(Stettin) 요새를 항복하게 만들었으며, 제국이 벌인 거의 모든 대규모 돌격에 참전했다.
제정기 최고의 화려함
펠리스(pelisse)와 돌만(dolman), 사브라슈(sabretache)로 무장한 후사르는 제정기 가장 눈부신 기병이었다. 각 연대는 우아함을 서로 겨루었고, 어느 병과보다도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했다. 파란색, 빨간색, 갈색 등 연대별 색깔은 달랐지만 그 본질은 모두 같았다. 대담하고 도발적이며 연극적인 매력을 지녔고, 언제나 멋지고 기지가 넘쳤다. 군복의 화려함 자체가 이들에게 평범함을 금지했고, 스스로를 초월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후사르들은 위업에서 또 다른 위업으로 질주하며, 적진 한복판에서 경쟁자 없이 원거리 기습 작전까지 감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군복과 장비의 세부
1804년 기준으로 후사르의 머리 장식은 흰색 코드와 고유 색상의 깃털을 얹은 검은 샤코(shako)였다. 관자놀이 옆으로 땋아 늘어뜨린 두꺼운 삼각 머리는 칼날 무기의 타격으로부터 머리를 지키는 방어 구실도 했다. 개인 무장은 4년력(An IV) 사브르와 1786년형 카빈총이었다.
1810년에는 네덜란드 후사르 연대를 모태로 제11후사르연대가 창설되었다. 이 연대는 돌만 안감에 흰 양가죽을 댄 유일한 연대였고, 정예 중대 역시 흰 곰가죽 콜백(colback)을 쓴 유일한 부대였다. 같은 해 스페인에서는 제9후사르연대의 중대들을 기반으로 제12연대가 조직되었으며, 이 부대는 '제9비스(bis) 연대'라는 명칭과 함께 제9연대의 군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용맹의 대가
무모할 정도의 대담함은 후사르의 대열을 빠르게 얇게 만들었다. 1813년 뤼첸(Lützen) 전투를 하루 앞두고 황제는 제1후사르연대에 명예레지온 십자장 25개를 하사했다. 그러나 다음 날 저녁 점호에서, 전날 새로 훈장을 받았던 이들 가운데 생존해 대열에 남아 있는 자는 불과 5명뿐이었다.